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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리치 Mar 26. 2024

고독하고 싶은 순간들

사진에세이 #03. 완전한 자유로움

< 완전한 자유로움 > Sydney, Australia, 2019


자유의 삶을 늘 지향하지만, 아직도 형식에 매어 살고 있습니다.


가장 고독하고(자유롭고) 싶었던 시기가 언제였냐고 물어본다면, 대학교 2학년 모든 것을 내던지고 호주로 갔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게 됩니다. 제가 스스로 짊어진 짐으로부터, 한국사회로부터 너무 멀어지고 싶었고, 고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떠난 호주에서도 저는 또 사람들에게 얽매였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어딜 가나 사람과 관계된 일이고, 그 안에서 나는 사회적 활동이든 경제생활이든 해야만 하는 인생이니 현실을 받아들이자고요. 그래서 더 빨리 한국행 리턴 비행기를 택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에는 제가 고독해질 일은 현실을 위해 다 미루고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만, 그런 저를 시험하듯 딱 10년 뒤 그 결심은 한계에 닿고 말았습니다.


제가 스스로 짊어진 제 짐을 또다시 벗어던지고 싶었던 때는 바로 2018년 입사 5년 차 때였습니다.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선배님께서 회사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당선이 되었고, 저는 얼떨결에 입사 5년 차에 노동조합 전임 간부가 되었습니다. 회사 업무를 하지 않고 같은 연봉을 받으며 회사의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위해 일하는 전임 간부의 일을 저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제가 봉사 정신이 강해 보였기 때문인지, 함께하면 즐겁기 때문인지 저를 택해주신 것은 너무 감사했지만 저의 인생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들과 얽혔고, 가장 많은 오해와 구설에 올랐던 혼돈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시작하면 모든 걸 거는 스타일입니다. 여유가 없는 스타일이지요. 몸을 사리지 않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오해들과 소문들이 있었을 걸로 압니다만, 그때 그곳에서 일했던 저의 모든 순간들은 진실 됐고, 정의로웠고,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그 일을 한다고 해서 혜택을 더 받는 것도 아니지만 사명감 하나로 열심히 일했고, 하루에 그렇게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것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초선이신 위원장님까지도 처음 해보는 집행부의 살림을 하나씩 꾸려나갔습니다. 30살이 갓 되었을 때였고 대리 1년 차였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꽉 채워서 일했던 1년 반의 세월이 흘렀고, 저는 전임 집행부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가장 고독하고 싶었던 때인 20대 초반에 떠났던 마음의 고향 시드니로 2주일간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빠르게 머릿속을 비워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그때에 마음의 고향 시드니에서 고독하게 혼자 걸으며, 하루아침에 그 모든 관계들이 끊어진 것 같은 홀가분한 고독을 즐겼습니다.


역시나 고독한 것이 좋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 매일 토론하고, 싸우고, 서로의 의견이 맞다고 고집해야 했던 일들을 내려놓고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고,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 낯설지만 낯익은 그곳에서 고독한 2주일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정화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고독해 보이는 것들을 찍었습니다.


우리네 삶은 누구도 완전한 위로를 해줄 수 없는 철저히 혼자인 삶을 살아가는 것인 줄 익히 알지만, 그보다 더 고독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순간에는 외롭고 싶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인생과 그에 대한 나의 감정들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독과 외로움은 사전적 의미는 같아도 섬세한 차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럴 땐 조용히 나무 그늘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오래 좋아하던 책 표면에 덤덤하고 꾸며지지 않은 글꼴로 쓰인 활자들을 보고있노라면, 외롭지도 북적하지도 않은 만족감이 밀려옵니다. 이 사진은, 그런 순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찍은 사진이어서, 모여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벤치에 홀로 앉은 이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도, 복잡해 보이지도 않고 고독하고 평화로워 보일 뿐이었습니다. 고독해 보일 뿐이지만 왠지 자유로워보이는 것이죠.


인생을 살다 가끔 고독해서 힘들 때엔, 완전히 자유롭다고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요. 그러다 보면 또 북적해지는 시간이 오고, 자유롭던 그 고독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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