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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남 Jul 25. 2020

부랑자인가 예술가인가, 혹은 구세주인가

창작소설 #02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창조자에 관한 이야기

4월이라고 했나? 내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는 시기 말이야. 아마도 따뜻한 햇볕이 부서지는 좋은 날이겠구먼. 이번 겨울은 유독 혹한이 길었지. 기후 온난화로 춥지 않은 겨울이었다는 말도 있던데 아마도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일수도 있어. 나 같은 사람에게 겨울은 언제나 고통이지. 그럴 때면 항상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이 간절히 생각나. 가지에서 푸른 잎이 차오르고 우듬지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찬란한 그 봄 말일세. 종일 뜨끈한 볕 아래에서 일하고 선선한 밤바람을 맞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야. 그러다 가끔 바람을 타고 온 시큼한 냄새가 나를 자극하곤 했었어… 그래, 이 일은 그 냄새로부터 시작된걸세. 내 평생을 바쳐서 해온 이 일 말이야.


시큼한 냄새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면 그 냄새는 점점 기름진 생선 비린내 같은 것이 됐다가 쿰쿰한 곰팡내 같은 것으로 변해가네. 그 냄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가까워질수록 굉장히 복잡한 어떤 것을 뭉쳐놓은 것 같은 괴상한 냄새가 난단 말일세. 난 매일 오랫동안 그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게 향기롭지는 않았네. 하지만 싫은 것도 아니었어. 그 냄새는 그러니까… 스펙트럼이야. 색깔로 치면 무지개 같은 거지. 어떤 책에서 보니 커피나 와인, 위스키에도 그런 냄새의 복잡한 스펙트럼이 있다고 하더구먼. 테이스팅 노트가 어쩌고 중간 아로마가 어쩌고 또 피니쉬가 어쩌고 그러더라고.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이 집게손가락으로 동그란 잔을 들고 휘휘 젖다가 한입 머금고, 우물우물하다가 또 꼴깍 삼키고, 어쩌고저쩌고 잘난 척하는 그런 거 말이야. 그런데 향의 복합성을 말하자면 이게 최고라고 확신하네.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 기피하고 나를 천대시 했지만 말이야.


어쨌든 그건 동네 가로등 밑에 한가득 비닐로 쌓여있네. 마치 연극 무대 위의 배우들 같아. 그 녀석들 중 가장 주인공 같은 놈을 골라서 내 다리 사이에 끼워. 난 이미 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지. 비닐의 꼭대기는 꽁꽁 묶여있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리본으로 묶은 선물상자 같다고 느끼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꼼지락거리면서 매듭을 긁어대. 급할 건 없었어. 이 세상에 그걸 원하는 건 나밖에 없거든. 그래, 나밖에 없다… 그게 내가 이걸 원하는 이유였어. 어쨌든 비닐의 매듭이 풀리는 순간 그 안에 뭉쳐있던 것들이 튀어 올라. 그러면 그 안쪽에 있던 온갖 것들을 합쳐놓은 듯한 냄새가, 그 가스가 확산하면서 순식간에 내 콧속을 지나 뇌세포를 자극하고 중추신경을 때리지. 그러면 내 머릿속은 온통 깜깜하게 변하네. 그러니까 마치 무지개의 모든 색상을 섞어버려서 검은색이 된 것처럼 내 머릿속을 물들인다고… 검은색은 채워진 색일까, 비워진 색일까. 그래 무지개는 빛의 속성이니까 다 합치면 완전히 하얗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근데 어차피 하얗든 까맣든 채워져야 비워지고, 비워져야 채워지는 것 아니겠나. 둘 다 별 차이가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검은색이든 하얀색이든 그건 무의 상태야. 내 머릿속이 완전 무의 상태가 되는 것이지. 그럼 나는 마치 쓰레기 비닐봉지를 끌어안고 좌선하고 있는 부처가 된 것 같은 기분이네.



근데 어차피 하얗든 까맣든 

채워져야 비워지고, 

비워져야 채워지는 것 아니겠나.



그 깨달음… 그 상태에서 내 창조는 시작된다네. 형형색색의 오브제들을 늘어놓지. 비슷한 색상끼리, 비슷한 재질끼리 분류하기 시작해. 과자봉지 같은 것을 한쪽에, 휴지들은 이쪽에, 플라스틱은 이쪽으로, 그리고 그 분류에서도 색상과 재질 상의 차이를 따져서 다시 분류하는 거야. 성질과 색상, 재질, 냄새 그리고 크기. ‘5진 분류체계’일세. 이걸 내 멋대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평생에 걸쳐 연구했다는 걸 알아주게. 그런데 이 일을 하다 보면 내게 필요한 건 자동으로 얻게 돼. 어제는 봉지 깊숙한 곳에서 식빵 한 봉지를 찾았어. 아마도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버리려다 보니 그렇게 깊숙이 처박아 놓은 거겠지. 사실 가치 있는 건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법이야. 어쨌든 식빵에 얼룩덜룩한 곰팡이가 피어 있었는데 난 정말 배가 고팠네. 처음에는 그런 것이… 가끔 배탈을 일으키기도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은 정말 속에서 아무런 거부감이 없어. 이 일을 사명으로 받고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나에게 신께서 은혜를 내려준 거야.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러나 난 먹고 살고자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네. 구걸하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니지. 사람들이 가끔 길에서 쉬고 있는 내게 돈을 주기도 하고, 고철이나 빈 병을 모아서 가져오기도 해.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런 걸 받지 않아. 그들은 내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무식한 사람들은 내가 쌓아 올리는 이 정리정돈의 세계를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단 말이야. 그들은 지식을 하찮게 여기고 무료하게 유튜브나 보면서 시간을 죽이지. 자신들의 생명 또한 이 쓰레기들처럼 혼돈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야. 사람들은 지식을 하찮게 여겨. 그들이 읽지도 않고 버린 이 책들을 보게. 나는 이 지식을 꼼꼼히 탐구하고 고민하였네. 정말 오랫동안 고민하고 또 이 일을 실행하였어… 내 깨달음은 이것이네. 온 우주가 쓰레기의 혼돈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


나는 혼돈으로 향하는 우주의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 평생 쓰레기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정리해 왔네. 내 말을 명심하게. 세상은 혼돈의 상태로 쓰레기 비닐봉지에 담기고 있다는걸. 그 안은 정리의 스펙트럼이 완전히 뭉쳐지고 짓이겨진 암흑의 세상이지. 그 카오스의 비닐봉지가 가득 담기는 순간 신께서는 비닐봉지의 매듭을 완전히 닫아 영원히 묶어버릴걸세. 그 매듭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암흑의 혼돈이네. 요한계시록 3장의 이 말을 꼭 기억하게.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


*

‘세상에 이런 일이’ 취재진은 긴 시간 동안 장기복 씨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설득한 끝에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가 머무는 그 쓰레기 천지의 공간에 앉자 기복 씨는 의외로 망설임 없이 자신의 말을 쏟아냈다. 마치 몇십 년 동안 쑤셔 박아 놓았던 쓰레기 봉지를 푸는 것처럼 말이다. 정상은 아니지만, 그의 생각과 논리가 너무도 특이하고 심오했기 때문에 아무런 편집 없이 내용을 그대로 실어서 그 해석을 독자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조사 결과 그가 S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공무원 고시에 여섯 번 실패했던 것으로 보아 마음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정신 분열 증세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 제보된 바와 같이 그가 만든 조형물은 1㎡ 크기의 정방형 쓰레기 블록을 쌓아 올려 피라미드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고, 주민들의 신고에 의해 두 차례나 철거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피라미드 쌓기를 포기하지 않고 그것이 신의 사명이라며 철거반에 완강히 버텼다. 그러다 그의 이상한 조형물이 입소문을 타면서 구경꾼들을 모았고 지역 상권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게 되자 주민들은 더는 민원 제기를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장기복 씨는 건강이 최근 급격히 악화하였고 자신의 시간이 혼돈의 암흑 앞에 다다른 것 같다며 기자에게 유언장을 건넸다. 그의 유언은 너무도 기괴하여서 편집부에서 삭제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의 간절함을 이기지 못해 마지막 말을 싣기로 했다.


저 장기복의 시신은 불태우거나 땅에 묻지 말고 부위별로 분해한 뒤 5진 분류법에 의해 정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머리털과 몸의 털을 다 뽑아서 한 방향으로 정리해주십시오. 머리털과 몸의 털은 재질이 다르니 그 안에서도 정리가 필요합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비슷한 크기의 분류입니다. 뼈는 같은 성질의 분류로 그 안에서도 크기의 분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기 또한 모두 크기와 색상을 구분해서 정리해주십시오. 그리고 가죽은 펼쳐서 장기들을 잘 포장하는 데 써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쓰레기들과 합쳐서 1㎡ 정방형 쓰레기 블록의 일부로 사용해주십시오. 언젠가 세상에 완전한 카오스의 종말이 올 때 유일하게 정리된 제 작품들과 그 일부인 저는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

김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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