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그 사람과 함께 한 모든 날들은.

by 나름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그 날이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다.


짧게 만난 8살 많은 누군가와의 연애가 끝나고 원래의 나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소모임에 가입을 했다. 친구와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그것도 어떤 사람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사람들 틈에 혼자 들어가 자기소개를 하고 친해지는 건 나로서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는데, 그 때는 그냥 나답지 않은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소모임 어플을 깔고 여기저기 뒤져보다가 등산하고 캠핑하는 모임에 가입을 했다. 등산이랑 캠핑은 혼자 못하니까, 별 생각없이 '남들이라고 하나? 뭐 어때?' 정신으로 가입하고 첫모임에 나갔다.

분명 가입자중에는 여자들도 많았는데, 왠걸. 내가 나간 모임날은 남자 셋이 고깃집에 앉아있었다...

'그래도 뭐 어떤 사람들인지나 보지 뭐.'

이 날, 내 옆에 그 사람이 앉아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는 반들반들 윤이 나고 모자를 눌러 쓴, 반바지와 후드티가 잘 어울리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내 음료를 챙겨주고, 내 젓가락이 떨어지면 재빨리 주워주고,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나를 더 신경쓰는 게 얼핏 바람둥이 같았다.

대충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됐는지 이야기하면서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고 그 후에 그 사람이랑 개인톡을 주고 받다가 둘만 만나게 되었고, 이 모임은 그 날 이후로 흐지부지 되면서 사라졌다. 웃기게도 결국 나는 등산, 캠핑 모임에서 단 한번도 등산이나 캠핑을 가보지 못했다. 멤버들이 적어도 50명은 됐던것 같은데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기억도 나질 않는다.


우리는 첫번째 데이트에 당일치기로 춘천에 갔다.

닭갈비집 연통 넘어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해 가며 정신없이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쉼없이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늦지않게 출발해야된다는 사실도 잊고 깔깔거렸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고, 우리는 표현을 잘 하는 사람들이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좋다, 사랑한다는 말도 잘했고 애정표현도 잘했다. 그 사람 친구들을 만날때면 다들 '얘가 잘해주죠?'라는 이야기를 했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성격 좋은 사람이었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러 혼자 여행갈때는 용돈도 챙겨주고, 공항에서 읽으라고 이메일도 보내주는 세심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웃느라 정신이 없었고 헤어짐이 아쉬웠다. 한번은 어느 쇼핑몰에서 친구가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는데, 내가 남자친구랑 어찌나 행복하게 웃느라 정신이 없던지 자기를 쳐다보지도 않더란다.


차가 있고 운전하는 걸 좋아했던 그 사람은 늘 주말마다 춘천이며, 어딘지 알수 없는 외곽에 나를 데리고 다니며 콧바람을 쐬게 해줬다. 매 주말이 기대되고 신이 났다.


그 전까지 나의 연애는 길어야 1년이었고, 정말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아"하면 "어"하는 사람과 만나니 연애가 이렇게 재미있을수 없었고, 내 마음 가득 꽉차는 충만감을 느꼈다. 사랑이 많은 나는 마음껏 사랑을 퍼주었고 또 되돌려받으며 반짝거리는 시간들을 보냈다.

사진이 취미인 그 사람은 늘 내 모습을 예쁘게 남겨주었다. 내가 반짝거리던 그 때, 28살부터의 나는 그의 사진으로 남아있었다. (결혼하면서 그 때 그 사진들을 지워버린 것을 매일같이 후회한다. 그때 그 사진들 좀 보내줄수 있냐고 연락하면 안되겠지..)


강아지가 주인을 만나면 팔딱거리며 꼬리치고 얼굴을 부비는 것처럼 우리가 딱 그랬다. 싸울때도 있었지만 불같이 싸우고 또 울면서 화해하고 그것조차 추억이었다. 한번은 여행가서 크게 싸우고 있는데 그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져 서로 눈물흘리며 웃는걸로 끝낸적도 있다.


그렇게 4년이 흐르고 그는 곧 나이고 나는 곧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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