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Kaleidoscop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을산다 Apr 05. 2019

CCTV 는 우리 아이를 지켜줄까?

정부가 파견하는 아이 돌보미의 14개월 영아 학대 사건 발생.

나는 줄곧 일부의 일탈을 감시 사회로의 이행으로 풀 수 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지금은 과거만큼 강하게 주장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  다만 고민을 함께 하기 위해 4년 전 글을 소환한다. 




미국 유학시절 겪었던 일이다.  아침에 허둥지둥 준비를 하다 보니 아이 도시락을 싸놓고 그냥 부엌에 두고 갔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도시락을 들고 다시 데이케어에 갔는데, 마침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는 시간이라 복도 끝에서 아이가 반 친구들과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아이들을 인솔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기저귀로 우리 아들의 머리를 두어 번 때리는 것이 아닌가.  불쾌한 기분이 번뜩 들었지만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단 도시락만 놔두고 집으로 돌아와 그 장면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그럴수록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저 사람이 우리 애를 원래 저렇게 함부로 대하나?  우리 애가 혹시 아시아인이라고 차별받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걸 문제 삼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생각 할수록 분해지는 마음을 꾹꾹 누르며 데이케어 원장에게 이메일을 썼다.  내가 본 상황을 설명하고 '물건으로 사람 머리를 툭툭치는 것은 우리 문화에서 용인되기 어려우니 우리의 문화를 이해해주면 좋겠다’며 매우 완곡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매달 우리 가족 생활비보다도 비싼 돈을 데이케어비로 지불하고 있었기에 ‘내 권리는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식 맡긴 사람은 언제나 ‘을(乙’)인지라 모국어도 아닌 말로 원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세를 낮췄다.  그런데 원장의 답은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머리를 때리는 행위는 어떠한 문화권에서도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담임선생님과 이에 대해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같은 내용을 전체 선생님들과 공유해 아이들에게 좀 더 친절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며칠 후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사과를 받았고, 나 또한 “이 일로 기분 상하지 않았길 바란다”고 더불어 사과의 말을 전했다.


최근 보도된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을 보고 ‘혹시 내 아이도?’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 주변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사건에 분개했다.  겨우 서너살 된 아이가 선생님에게 맞아 내동댕이쳐지는 걸 보고 울컥하지 않을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그만큼 여론재판의 강도는 높았다.  이의 영향으로 해당 교사에 대한 사법절차도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도 전국의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고, 언론에서는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이같은 사태를 불러일으켰다고 진단했다.  더불어 어린이집 교사 선발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그리고 국공립은 물론 민간 어린이집 시설에 대한 정부의 관리가 얼마나 소홀한지도 후속 보도로 이어지고 있다.  주무부처 장관은 어린이집 학대 사건을 시설 부족으로 인한 어린이집 과밀화 문제와 연관 지으면서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을 제한하겠다는 시대역행적 발상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가 내놓는 대안마다 졸속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정부는 CCTV 설치 의무화로 성난 부모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다.  가장 신속하게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과연 CCTV는 이들 기관에서 벌어지는 어린이 학대를 예방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작은 사건에도 부모들은 선생님의 미래를 담보로 피해보다 더 큰 보상을 요구하려 들진 않을까?  예상컨대 CCTV는 돈은 돈대로 쏟아 붓고 오히려 학부모와 교사 간 불신만 조장하는 기재가 될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CCTV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해 준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회사에서도 우리 아이가 잘 놀고 있는지, 밥은 잘 먹는지, 그리고 혹여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시때때로 확인할 것이다.  혹여 의심스러운 장면이 포착된다면 내 눈으로 아이를 직접 보고 확인할 때까지 안절부절 할 것이다.  또, 한 번 이런 경험을 한 이상 더 자주 CCTV를 확인할 수밖에 없어 당연히 회사 일에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모든 행동의 기저에는 ‘나는 교사를, 혹은 어린이집을 믿을 수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불신이 깊어지면 교실뿐만 아니라 화장실에까지 CCTV를 설치하자고 하는 부모가 생길 수도 있다.  혹여 교사가 CCTV가 잡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내 아이를 학대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교사들은 또 어떠한가?  제한된 공간 안에서의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한 사람도 아니고 수십 명이 시시때때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것이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교사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다.  게다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를 때리는 행위로 오해하고 찾아올 학부모들을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손가락 하나 대는 것조차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닐 것임이 빤히 눈에 보인다.  실제 다수의 연구 및 실험 결과를 보면, 고용자의 불신은 피고용자의 근로 의지를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당연히 사표를 내는 어린이집 교사들도 적지 않을테고, 이는 결국 학대의 원인 중 하나인 ‘어린이집 과밀화’ 문제로 또 다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신뢰다.  사실 부모들은 교사를, 어린이집을 ‘믿고’ 아이들을 맡겨 왔다.  이 믿음에 뚜렷한 근거가 없었다 해도 맞벌이 부부들은 ‘그들을 믿는다’고 스스로 믿어야만 한다.  지금껏 그래왔다. 그것이 '교사'라는 이름이 지니는 힘이다.  인천 어린이 학대 사건은 부모들의 이런 믿음에 찬 물을 끼얹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받은 상처가 작지 않다.  물론 이번 사건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이지만, 부모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어떨까? 


미국에서 돌아와 아이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냈는데, 이 두 곳은 모두 아이를 데리러 가면 부모는 현관에서 아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학부모 참관 수업을 하는 것 외에 아이가 하루 여덟, 아홉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들어가 볼 기회는 거의 없다.  부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게 있나 의문스럽기도 하다.  내게만 한정된 예인가 싶어 지인들에게도 물어보니, 대부분이 나와 마찬가지였다.  어린이집 등의 기관이 '우리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라는 태도로 일과 시간 중 시설을 부모들에게 개방하면 어떨까?  이는 ‘부모들이 불시에 찾아오더라도 우리는 꺼릴 것이 없다’는 강력한 자신감의 표현이 될 것이며, 이런 자신감은 학부모들의 믿음을 되돌리는 촉매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하는 때에 찾아가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을 두고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교사와 학부모 간 신뢰는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다.  내가 데이케어 교사의 ‘실수’를 포착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물론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고민도 수반돼야 한다.  수시로 이뤄지는 초과 근무에도 불구하고 한 달 120만 원 남짓한 월급과 열악한 복지 혜택에 시달리는 어린이집 교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을 겪으며 대체로 공감대를 이뤘다.  더불어 전국에 4만 3천여 개에 불과한 어린이집, 이 중에서도 5% 수준에 불과한 국공립 시설 확충, 그리고 교사 재교육 및 관리를 위한 예산 편성 등의 노력이 병행될 때 부모와 교사 간 신뢰의 틀이 공고히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깨끗한 공기가 복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