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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산다 Jul 12. 2019

애 키우는 엄빠가 정치를 한다면?

유럽집행위원장이 될 일곱 아이 엄마  뉴스를 보며

며칠 전, 유럽을 이끌 핵심 보직-유럽연합집행위원장과 유럽중앙은행-에 모두 여성이 기용될 것이라는 뉴스에 전세계가 잠깐 흥분했다. 유럽중앙은행장에는 잘 알려진 크리스틴 라가르드 현 IMF총재가, 집행위원장에는 우르술라 폰데라이엔 독일 국방부장관이 기용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끈 건 우르술라 폰데라이엔이다.

우르술라 폰데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핵심 측근으로, 가족부장관-노동부장관-국방부장관을 역임했으며 이변이 없는 한 EU집행위원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이라는 이력도 그렇지만, 더욱 눈길을 끈 건 그가 일곱 자녀의 엄마라는 사실이다.


우르술라 가족

어머, 하나 낳아서 키우기도 어려운데, 애를 일곱이나 키우면서 장관을 14년동안이나 했다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 EU집행위원장이라니!


독일이 우리나라보다야 애 키우기 좋은 환경이지만, 그렇다고 여성의 가정 내 역할에 대한 보수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 "독일에서는 좋은 교육을 받으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죠. 그렇지만 이건 아이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나 성립합니다. 아이가 있으면 집에 있어야죠. 일하는 엄마는 아이한테 좋지 않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일하는 엄마들은 죄책감에 시달리죠."

한국이나 독일이나 인식은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그녀는 교수인 남편을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에 가서야 아이 있는 여성도 워라밸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후 아이를 더 낳아 독일로 돌아올 땐 애가 다섯(독일에 남겨두고 온 두 아이 포함 일곱)이 되었다고 한다. 

여성의 워라밸을 가능케하는 핵심 요소는 남편의 육아 공동 책임. 우르술라의 정치 입문 전까지만해도 두 사람이 공동으로 육아 부담을 나눈 듯 하나, 정치 입문 이후에는 남편이 육아를 더 많이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한다. "시간이 없다고요 시간이.ㅎㅎ"


대신 우르술라는 메르켈 최측근임에도 불구, 가족 정책에 있어서는 보수 기민당의 노선과는 다른 입장을 펼침으로써 남편의 육아를 한층 수월하게(?) 만든다. 2014년 연합정부에서 사민당 출신 가족부 장관이 세 살 미만 자녀를 둔 부모들의 법정 근로시간을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줄이는(임금은 그대로 유지) 정책을 추진할 때 기민당은 경제위축을 이유로 반대 했다. 그러나 기민당 출신 국방장관 우르술라는 이러한 가족부 안을 지지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나도 때때로 집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말이다(당시 독일에서는 육아를 이유로 고위직이나 연봉높은 직업을 때려치우는 사례가 종종 나오고 있었다).  우르술라의 이러한 태도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스스로가 가족부 장관이던 2005~2009년에는 아빠들의 육아 휴직 의무화에 힘썼으며, 2010~2013년까지 노동부 장관을 하면서는 아빠들의 육아 휴직 유급화를 추진했다.  


이처럼 양성 평등한 양육 부담 실현을 위한 우르술라의 꾸준한 노력은 추상적 이념보다 일곱 아이 부모로서의 정체성, 당사자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르술라의 이같은 태도가 기민당의 보수성에 합리성을 더하는 재료가 됐다고 일부에서는 평가하기도 한다.


내가 여태 본 실존하는 최대 다자녀 가정은 다섯 아이를 가진 집이다. 아빠가 공무원이고 엄마는 전업주부인데 아이를 돌봐주시는 돌보미 아주머니를 두 명 쓴다고 했다. 엄마가 공무원이면서 애를 넷이나 낳은 사람도 봤는데, 이 집이 엄마, 아빠 손으로만 애들을 키우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하나 키우면서도 친정집 근처로 이사왔었고, 내 주변에도 평균 둘 정도씩 아이를 가진 맞벌이 부부들은 대부분 아주머니를 고용하거나 부모님들의 힘을 빌린다. 그러니 돈을 벌어도 번 거 같지 않고, 밖에선 애 걱정 집에선 일 걱정을 한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고, 사교육비는 화수분이라도 있는 것처럼 줄줄 나간다. 이렇게 살아온지 한 세대쯤 되니, 아예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게 편한 세상이 돼버렸다.


애 키우고, 집값 걱정하고, 사교육비 때문에 등골 휘는 이들이 정치를 하고 정책을 만든다면 어떨까? 

여전히 지금 같을까? 

 

참고: 

https://womenintheworld.com/2015/10/08/ursula-von-der-leyen-mother-of-all-multi-taskers/

http://www.reuters.com/article/2014/01/10/us-germany-parents-pay-idUSBREA090CS201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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