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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산다 Jul 16. 2019

엘리트에게 찾아오는 갈등의 순간들

“강제징용 사건 검토 보고서를 그대로 전달하는 게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그런 영향이 있을 것 같아 주저됐습니다.” 지난주 수요일(10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첫 증인으로 OOO 변호사가 나왔다. 그는 2012~2014년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강제징용 재판 지연 시나리오 등을 검토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OOO에게 물었다. “2013년 12월 당시 임종헌 기조실장이 ‘검토 문건을 대법관 재판연구관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을 때, 증인은 왜 ‘보내도 되느냐’고 머뭇거렸습니까?” OOO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는 고민 끝에 문건에서 재판 진행 속도를 검토한 대목을 삭제하고 보냈다고 했다.  양심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OOO은 지시에 따르면서도 계속해서 소극적 저항의 흔적을 남겼다. 지난 5월 23일 임종헌 재판에 출석한 조인영 전 기획조정심의관도 다르지 않았다. 

모 신문에 실린 칼럼 중 일부다.


OOO은 엘리트다.

고등학교에서도, 서울법대에서도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전국구 시험에서 늘 소수점대 점수를 획득한 그는 전설이기도 했다. 그는 사시를 통과해 판사로 임용된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그가 워커힐 호텔에서 후배 몇몇에게 피자를 사뒀던 일, 삼청동 모처에서 와인을 사줬던 일들이 스친다. 공부만 할 줄 아는 샌님같던 얼굴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자신감 팍팍 묻어나는 얼굴로 바뀌고 있었다. 


엘리트에게 찾아오는 갈등의 순간들. 

이 순간을 슬며시 우회할 것인가, 뻥 차고 달려나갈 것인가. 

뻥 차고 달려나가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비난의 화살을 쏴대는 이들은 이러한 갈등 상황에 놓여보지 못한 이들은 아닐까....? 공개되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몰랐을 일들, 그래서 부끄러울 필요도 없을 일들, 양심을 논할 기회조차 없었을 일들이 수없이 많다. 크고 작음의 차이, 공개 여부의 차이일 뿐.

 

안타까우면서도 이해가 되고, 그러면서도 결코 옹호할 수는 없다. 실망스럽기도 하다. 영광스럽던 OOO의 이름의 이렇게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는 지금 김앤장 변호사다. 김앤장이 그렇게 욕을 먹고 먹어도, 그 곳은 법조인들이 선망하는 곳이다. 왜 우리가 엘리트라 부르는 이들은 이 정도밖에 될 수 없는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사회가 문제인가, 개인이 문제인가. 나는 그것이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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