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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산다 Mar 31. 2021

물 흐르는대로 몸을 맡긴다

당신들이 만들고 있는 나쁜 세상... 당신들의 천국

'30년된 가방'을 들고 다니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임대차3법 시행 직전 자신의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14.1% 올렸다는 소식에 이어, 그의 예금 잔고가 14억 원이나 된다는 소식까지 나왔다. 연이은 부동산정책 실패와 LH사태 와중에 터진 일이라 대통령은 재빨리 '경질'이란 정치행위로 꼬리를 잘랐다. 그러나 초록은 동색이라 했던가. 임대차3법을 추진했던 민주당 의원들 중엔 5%의 12배나 되는 64% 전세금 인상을 감행한 인사도 있다 (누군지 궁금하면 여기 클릭--> https://www.mk.co.kr/news/realestate/view/2021/03/297635/).  


"난 전셋값 대느라 헉헉대는데 누구는 아파트값이 몇 배로 뛰며 돈방석에 앉고 (중략) 힘 있는 자들이 휘젓고 다니는 초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비애는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낳게 한다 (2011, 한겨레칼럼)
- <386세대유감> 중 인용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ㅠㅠ

'건물주'만이 답이라는 대한민국 만고의 진리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재직하며 몸소 보여주었던 김의겸이 기자시절 썼던 칼럼 중 일부다. 그는 최근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를 승계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저 기득권일뿐인 이들에게서 희망의 싸인을 찾고자 하는 미련곰탱이 같은 삶을 이어온 나는, 앞으로도 쭉 가난한 미련곰탱이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기회만 되면 기득권의 행태를 copy&paste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기득권층의 내로남불은 나날이 과감해지니.




2020년 4월 어느날 기록:

2014년에 ㅁㅁ동으로 이사했다.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낮은 동네.

2.6억 매매가인 집에 2.1억 전세를 주고 들어와 2년 후 4천을 올려달라해서 2.5억이 됐다. 한차례 묵시적갱신 후 올해 계약 시점 도래. 작년에 일찌감치 우리에게 언제까지 살꺼냐고 물어왔던 집주인이 갱신일 3개월을 앞둔 지난달 우리의 연락에 대꾸가 없더니 이달에야 연락이 와서 4천을 올리고 싶다고 한다. 1천만 원 정도 올려달라 하면 그냥 살고 2천만 원 정도면 부엌과 화장실 수리를 요청해서 살려고 했는데, 어이 없이 4천을 올려달란다. 왜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자기가 필요하단다. 그들이 세 사는 OO동 집 주인이 그만큼을 올려달라고 한걸까. 정확히 “그만큼이 필요하다”고 했다. 집주인의 집주인이 요구한 금액이 우리 가족 어깨에 떨어졌다.

임차인 보호법? 흥!이다.


2020년 4월의 또 다른 날 기록:

코 앞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했다. 나는 합리적인 인간인가를 묻는다.

다주택이라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 집을 판다는 용산구 거주자 전 주인과 이 집을 1.6억 들고 전세 껴서 사고자 하는 앞으로의 집 주인, 그리고 우리.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다주택자가, 중간에 상투끝 잡고 들어온 생애 첫 임대인인 듯 보이는 아저씨가, 그리고 맨 끝에 우리가 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쪼그라드는 이 느낌이란.



2021년 1월에 있었던 일:

천안에서 원룸을 얻어 살고 있는 동생. 전세 1.05억에 1년 계약을 했는데, 계약갱신일 두달 전 "시세에 따라 4천을 올려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에 응할 뜻이 없음을 밝히자 갱신일 한 달 전 법률사무소 이름을 크게 박은 내용증명이 도착했다. "계약자는 너네 엄마인데 너가 살고 있으니 계약자와 실거주자가 달라서 넌 계약위반이고, 그러니 임대차보호법 대상도 안 돼. 순순히 나가지 않으면 명도소송할꺼야."라고 점잖게 협박을 해왔다.

이에는 이로 대응해야 하는 법. 변호사인 친구의 도움으로 똑같이 점잖게 협박을 하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결국 5% 올려주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아래는 상호 주고받은 내용증명 일부.

전세금을 4-50%씩 올려달라는 낯 두꺼운 이들이 천지에 깔렸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고 덤볐겠으나, 순순히 져줄 순 없다!

 



2021년 2월 어느날의 기록:

요즘은 OO 선배를 만나고 돌아설 때마다 왠지 마음이 찜찜하다.

분당에 살고 있는 그는 5억에 분양받은 하남 집 전세가가 15억까지 올랐다고 했다. 신혼부부가 새로운 세입자로 들어왔는데, 전세가격이 4억에서 7.5억으로 올랐단다.

"얼마를 받아야 하나 싶어 부동산에 물어보니 시세가 7.5억 정도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불렀지. 신혼인데 7.5억을 어떻게 마련했대. 그 돈으로 뭐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라 통장에 넣어뒀어."  

"그럴꺼면 그냥 좀 싸게 부르시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 어차피 돌려줄 돈인데. 7.5억이 뭐에요 당최."

"시세가 그렇다는데 뭐."


OO은 흔히 말하는 386세대다. 386의 피크 학번. K대에서 '죽창가'를 열렬히 불러제꼈던, 운동권 역사서를 쓰자면 꽤 비중 있게 서술될만한 그런 인물.

한 때는 흐르는 물을 거슬렀고, 그렇게 성공했다. 성공으로 지은 배 위에 앉아 물 흐르는대로 몸을 맡기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20대엔 좋은 세상을 꿈꿨다는데, 50대가 된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나빠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아니, 그들의 세상은 좋고 우리들의 세상만 나빠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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