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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Nov 21. 2023

어디에나 당신이 있었으므로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주말에 행사가 있어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스가 에어쇼를 한다고 했다. 행사를 앞두고 공군 비행기가 민가 위를 날며 에어쇼를 연습했다. 전투기가 지나가는 소리에 나는 아이처럼 설레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비행기를 보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늘이 파랬다.


뜬금없이도, 당신이 그곳 어딘가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남편이 아직 남친이면서 군인이었던 시절, 제대를 며칠 남기지 않아 생각이 많아진 까까머리가 말했다.

- 나 자퇴하고 파일럿 관련 학과로 진학해서 파일럿이 되고 싶어. 어릴 때부터 파일럿이 되고 싶었어!


재빨리 복학해서 부지런히 졸업하고 취직해도 모자랄 판에 자퇴하고 수능을 다시 보겠다니. 그게 군인 남자친구의 제대만 손꼽아 기다리는 여자친구에게 그토록 당당히 할 말인가 싶어 뒷골이 땅겼다. 그러나 갑갑한 군부대에 갇힌 군인의 꿈에 굳이 토를 달아 갈등을 조장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저 웃고 넘어갔다.

순박했던 군인 남자친구는 제대를 하며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고, 역시나 세상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재빨리 복학해서 부지런히 졸업해 취직을 했다. 그에겐 꿈을 되짚어 실현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지금 저 하늘 어디쯤을 얽매임 없이 날고 있을 것이다.  

하늘은 당신이 생각했던 그대로였을까.


남편의 세 번째 기일이 되었다.


늘 보이는 곳에 두었던 영정 사진을 태우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은 진작 떠났지만 나는 그때껏 당신을 보내지 못했다. 영정사진을 태울 결심을 한 뒤로, 그것을 태우기까지 몇 번이나 마음이 바뀌었다. 굳이 그걸 태울 필요까지 있나 싶으면서도, 삼년상을 치른 나에게 그건 꼭 필요한 통과의례 같이 느껴졌다. 나는 끊임없이 자문했다.

'내가 정말 당신을 떠나보낼 수 있을까?'


사진을 태우는 것이 생각만큼 슬프지는 않았다. 불길이 무서워서 잔뜩 긴장한 탓이다.

나는 사진이 타는 모양새보다 너울거리는 불꽃이 신경 쓰였다.


마침내 불길이 잦아들고 나서야 망연함이 밀려왔다. 새카맣게 되어버린 당신의 사진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당신이 떠난 직후 산채로 심장이 뜯기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울부짖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어디에 사는 누구든지 겪을 고통을 조금 일찍 맞이했을 뿐이라면 왜 그것이 하필 나여야 했나, 수많은 당신들이 있잖아.

나는 원망했으나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답이 없었으므로.


많은 이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들었으나 진정으로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어떤 타인도 나의 지옥을 메울 수 없었으므로.


이젠 당신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당신과 나 사이의 계곡에 시간이 빼곡하게 들어차고 있다. 당신의 따뜻한 말들과 체온이 희미해져 이제 나를 지탱할 것은 나여야 한다.


나는, 당신이 떠난 지 3년이 지난날 그의 영정을 태우며 한참이나 그 자리에 앉아 그를 생각했다.


날이 좋았다.

하늘이 청명했고, 구름은 하얬다. 햇빛이 선명하게 풀잎을 비추었다.

당신이 사라진 자리에 당신이 넘실거렸다.

젖은 풀잎에, 파란 하늘 너머 구름 언저리에, 굽이치는 물결 표면의 반짝임마다 당신이 묻어있었다.

당신이 사라져 온 세상으로 흩어졌다.


삼 년 전, 우리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바닷가에 놀러 갔었다.

나는 만삭의 임신부였고 이제 막 출산휴가를 쓴 참이었다. 당신은 아직 아빠이기보다는 소년티가 나는 청년이었다. 당신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쪼그리고 앉아 모래성을 지으며 그게 우리의 보금자리라고 말했다. 작은 물결이 자꾸 모래성을 허물어뜨렸지만 당신은 허물어진 자리 위로 계속 모래 벽을 얹었다.


그때 그 모래는 어디쯤을 뒹굴고 있을까.

자꾸자꾸 부서져  세상에 흩어졌을까.


나는 아마 당신을 잊을 것이다

당신의 목소리나 체온이나 따뜻했던 손길 같은 것은 어쩔 수 없이 잊을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세상이 너무 예쁠 때 이유 없이 슬프고 알 수 없이 눈물이 나겠지.

내 안에 당신이 방울방울 남아있어 나는 도리없이 주저앉아 한도 끝도 없이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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