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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Nov 23. 2023

잘가 보고시플꺼야

당신의 뒷모습에 인사를 건넨다 안녕이라고

모처럼 친정 부모님과 함께 동해 바다로 1박 여행을 갔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여행이다 보니 이것저것 신경 쓸 일도 많고 약간의 갈등 있었지만, 틈틈이 행복했다.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워 설악산 단풍을 구경하면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출발하려던 차에, 집에 남아있었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집 늙은 고양이가 죽었다...


밤이가 우리 집에 온 지는 20년 가까이 되었다.


쥐에게 먹힐 것 같은 크기의 갓 태어난 아기고양이였다. 태어나자마자 어미가 죽고 다른 새끼들도 시름시름 죽었는데 혼자만 살아남아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그 작고 앙칼진 밤색 고양이를 사랑했다.


밤이는 때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따뜻했다. 도하게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도 어느샌가 우울한 내 뺨에 촉촉한 코끝을  갖다 대곤 했다. 나는 가끔 밤이의 부드럽고 뾰족한 털에 얼굴을 묻고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심장소리 빠른 작은 짐승의 온기가 내 안에 깊이 스며들었다. 내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안 사실이었다.


2017년, 밤이가 자꾸 하혈을 하여 동물병원에 데려갔다가 뜻밖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2000년대 초반쯤에 데려왔으니, 그때도 이미 살 만큼 산 늙은 고양이였다.


안락사와 연장치료에 대해 가족회의를 하다가 나 혼자 안락사를 적극 반대하며 펑펑 울었다.


결국 늙은 고양이에게 수술까진 무리라고 판단하여 수액과 약으로 고통만 줄여주기로 결론지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무책임한 발언자였다. 나는 결혼해 독립한 상태였고 직장생활 중이었으므로 결국 이를 돌보는 것은 고스란히 엄마와 동생의 몫이 되었던 것이다.


대신 약값과 병원비는 동생과 내가 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내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러고 나서도 이는 3년을 더 살았다.


이는 우리를 참 많이 준비시켰다. 엄마와 동생은 6년간 가능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이에게 주사를 맞히고 약을 먹였다. 동생이 본격적으로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크게 내색은 안 해도 둘 다 많이 지쳤을 것이다. 나도 그 사이 남편을 잃고 어린 아기를 키우느라 이와 눈 맞추고 애정을 속삭일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다.


뭣보다 이 늙고 병든 고양이는 누가 만질 때마다 짜증스러워했고 괴로워하는 듯했다.


밤이는 마치 기다린 듯이, 가족들이 아무도 남지 않는 틈을 타서 눈도 감지 않은 채 떠났다.


여행지에서 집으로 달려오는 차 안에서,  친정아빠는 우리가 없는 곳에서 밤이를 조용히 수습하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가 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길 바라셨다. 혹시나 밤이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지 못할까 봐 걱정하셨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 죽음을 모르는 내 어린 아기가 고양이의 죽음을 맞닥뜨리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내 결심은 확고했다.

나는 이를 봐야 했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도 사랑하는 무언가와 이별을 할 때는 정면에서 인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했다.


사고로 떠난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결국 후회로 남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전히 보드라운 이의 털을 어루만졌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마당에서 꺾은 국화꽃으로 둘러싸인 이는 자는 듯이 죽어있었다.


털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분홍색과 보라색이 섞인 발바닥도 부드러웠다.


나는 자꾸자꾸 이와 이별했고, 아이에게도 몇 번이나 인사를 시켰다.


아이는 죽음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 해맑았으나 그러면서도 뭔지 모르게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 잘가 이야, 보고시플꺼야


​우리는 모든 생명이 언젠가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안다. 그건 어떻게 알게 되는 걸까? 갓난아기일 때 아빠를 잃은 내 어린아이는 언제쯤,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며 살아있는 자는 내내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될까.


- 엄마 근데 밤이가 어디를 갔어요?

- 응. 밤이는 나이가 많아서 이제 하늘나라로 갔어

- 밤이는 날개도 없는데 어떻게 하늘나라로 갔어요?

- ... 누구나 때가 되면 날개가 없어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돼.


아이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눈빛이었으나 마치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가 밤이야.


안녕,

여보.


보고 싶을 거야.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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