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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Sep 01. 2024

심리상담을 받으러 갔다

"이 심리상담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뭔가요?"

 동안 나는 늪 위에 선 기분이다. 부정적인 단어들이 피라처럼 나를 갉아먹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글을 쓰며 내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보며 나름대로 치유를 받기도 했는데 어느 날부터 무기력이 나를 잠식한 뒤론 글을 쓰려할 때마다 머릿속이 뿌얬고, 더욱더 필사적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매일 일과를 마치면 침대에 드러누워 유튜브 드라마 요약본을 보는 것으로 나의 무력감을 회피했다. 소위 막장 드라마를 쉼 없이 보다 보면 그 자극을 통해, 마치 내 생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유튜브를 끄고 그 지치고 축축한 적막감만 남는 순간이 오면 무기력은 소용돌이처럼 내 발을 잡아 끌어내렸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가라앉았다.


내 스스로 마음을 돌볼 여력이 없다고 판단되어 심리상담을 받기로 했다. 나의 두 번째 심리상담이었다. 남편의 죽음 직후 받았던 첫 번째 심리상담이 코로나 확산으로 어영부영 종료된 후로, 언제고 다시 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다 이번에 직장 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감이 생긴 것을 계기로 다른 상담소에서 상담을 재개하기로 한 것이었다.

 상담선생님은 친절했고 내 앞뒤 없는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내게 상담을 통해 얻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처음엔 직장스트레스에 대해 집중적으로 상담하고 내 마음의 상처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심산이었다. 내 상태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었고, 긍정과 활력을 되찾을 비방을 알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0회 가까이 진행한 상담에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순 없었다. 선생님의 첫 질문을 들은 뒤로 내내 상담을 받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생각했으나 막상 상담이 시작되면 두서없이 내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나를 모르는 아주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 없이 내 속마음들을 이야기했다. 직장에서의 갈등과 무너진 자존감, 너무 하찮아서 굳이 입밖에 내어 말하기는 치사하지만 미세하나마 내 마음에 상처를 준 사건들에 대해서도 의식의 흐름에 따라 떠들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아기를 키우며 겪는 고민이나 걱정에 대해서도 틈틈이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주의 깊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록하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조금 뻘쭘해졌다. 방금 전까지 친한 친구에게 할법한 소소한 이야기를 바닥이 보일 때까지 꺼내놓고 나면 문득 내 대화상대가 사실 매우 낯선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스멀스멀 어색함이 밀려온다.


직장일이 한창 바빠졌고 상담선생님도 상담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마지막 상담일정을 잡아두었다.


모처럼 심리상담을  두 달에 걸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인생이 길고 무섭고 어렵다.

 

긴 고민 끝에, 내가 이 상담으로 얻고 싶었던 것은, 그 모든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 내가 뭐든 잘 해낼 것이라는 격려와 믿음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심리상담은 그런 것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 걸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명확히 나뿐이며, 심리상담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완전한 타인에게 나의 내밀한 감정들을 털어놓는 것으로 불확실한 감정들을 선명하게 매만지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무엇보다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내가 내 자신을 돌보기 위한 방편으로써 심리상담을 받는다는 적극적인 행위를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나의 두 번째 심리상담을 마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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