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기로 했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삶을 움켜쥐었다.
그때 나는 매일 인터넷 검색창에 사별을 검색했다. 불시에 남편을 잃고 갓난아이를 키우며 살 방도를 찾아야 했고, 그 어딘가에 내 무너진 정신을 지탱할 것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내 불행이 어떻게든 특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함이 있었다. 세상이 넓어 젊은 나이에 배우자와 사별해 어린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모두가 나였으므로, 나는 결국 나에게 위안을 얻었다.
내 팔을 베고 잠든 갓난아기의 작은 머리는 늘 축축했다. 산후조리를 위해 약하게 튼 에어컨은 일정 온도가 되면 습한 공기를 내뿜었다. 피곤했는데 잠이 오지 않았고, 사실 자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 길었다. 울음은 시도 때도 없이, 예고도 않고 내 몸에 들어왔다 나가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뒤에도 여전히 내 삶이 이어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먹어야 했고 자야 했고 틈틈이 울면서도 시시때때로 웃고 떠들어야 했다. 심리적으로 심장이 뜯기는 것 같은 그 끔찍한 고통을 겪고도 작은 생채기 하나하나 매 순간 아파서 어이가 없었다. 삶이란 게 그리 간사했다. 때때로 그 사람이 없는데도 숨 쉬며 살아가는 일이 곤혹스러웠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가 불가마에서 하얀 재가 되는 동안 나는 차가운 대기실 구석 바닥에 모로 누워, 내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던 신실한 친척 어른에게 물었다.
-신이 정말 있나요. 있으면, 대체 왜요? 왜 그 사람을요. 저한테는 대체 왜요.
대답을 바란 물음도 아니었지만, 어떤 말도 나를 위로하지 못할 것을 알았던 그 다정한 친척 어른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분은 그 순간 본인의 믿음조차 흔들렸을까. 아니면 내가 신을 믿어 그 모든 지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를 기도해 주셨을까.
신을 믿을 수 있었으면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른다. 신이 행한 일들은 모두 옳고, 그가 신의 곁에서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더라면, 좀 나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불경하게도 원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끝내 믿지도 못했다.
눈앞을 뒤덮는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삶을 움켜쥐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내내 그 사람의 안위를 걱정했다. 어쩌다 한 번씩 그가 술을 먹고 연락이 되지 않으면 집착하듯이 전화를 걸었다. 온갖 잡념이 내 마음을 흔들어 지옥에 담갔다 빼내는 과정들을 거치면, 내 걱정이 우습게도 그는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고 나면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 지옥 같은 일도 아무 사람에게나 찾아오는 게 아니라고, 내가 어떤 최악을 생각하든 간에, 그것보단 더 나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혹은 오만함이었다.
집착하듯 전화를 걸던 때엔 그래도 그가 안전하리라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사고가 있던 그날에, 나는 오히려 그에게 딱 한 번 건 전화를 재빨리 끊었다. 행여나 그가 전화를 받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제발 급한 일이 있어 못 받은 것이기를, 상황이 진정되면 전화기에 부재중 전화가 찍힌 것을 보고 내게 제일 먼저 연락해 주기를,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믿었고,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바랐다.
나는 언제나 그 사람에게 당신이 없으면 못 산다 했다. 장녀로서 늘 무언가를 책임져야 하고 한없이 배려해야 했던 내 삶 속에, 나를 책임지고 배려해 주는 사람이 생겨서 고맙고 기뻤다. 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한 것이, 결국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내가 그 사람이 없어도 살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