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거의『컨테이져스』
1달에 1번 시립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독서토론 수업에 간다. ‘함께 읽기’는 참 좋은 장치인 것 같다. 마감일 덕분에 혼자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할 양서들이 읽힌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비교가 가능하며, 내가 놓친 부분을 건질 수도 있다.
토론이 끝나고 그날의 토론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16명 앞에서 얘기해야 했기에 부담스러웠고, 시간도 촉박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뭘 얘기하지. 버벅 거리면 어쩌지, 내 무식이 들통나면 어떡하지.’ 짧은 시간 동안 정신없이 생각하고 기록하고 다듬었다.
앞에 네 사람이 말할 동안 개요를 짜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들의 얘기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이정도면 다됐다는 안심에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5번째 사람이 말하고 있었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바빠 보였다.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지 않은 채, 정신없이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그것이 말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인지, 본인이 얘기할 대본일지는 판명되지 않았으나, 모두가 본인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고 자신 있게 얘기했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어땠을까.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듣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아이러니. 사실 이와 같은 상황은 독서토론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도로시 딕스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는 말했다. 경청은 본능이 아니라 학습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달콤한 말을 해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기가 말하고 싶어 하는 얘기의 절반만큼도 흥미롭지 않는 법.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내 얘기는 추락한다. 물론 경청이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무엇이겠지만, 세상은 내 얘기를 들어 줄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부 자기 계발서는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면 다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이것은 공짜를 바라는 심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내 얘기가 멀리 날아갈 수 있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는 입소문을 위해 계약을 해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얘기의 절반만큼도 흥미롭지 않은 상대에게 내 얘기를 듣게끔 만드는 그런 계약. 존버거의『컨테이져스』(문학동네,2013)는 일종의 '약관' 같은 책이다. 만일 듣는 사람이 ‘네가 하는 얘기가 내 얘기처럼 들리는’ 순간, 거래는 이루어진 것이다. 당신의 얘기는 퍼질 준비가 되었다.
비범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소셜화폐가 된다.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썰을 품고 있는 것. 저자는 이를 돈으로 보았다. 크리프 도그 스라는 유명한 핫도그 집이 있다. 가게의 구석에는 전화 부스가 놓여있는데, 이것은 또 다른 술집으로 통하는 비밀의 문이다. 술집의 이름은 “Please don't tell'이다. 콘크리트 정글 속, 상가들이 넘쳐나는 뉴욕에서 간판 없이, 정식 광고 없이 힙스터들의 성지가 되었다. 이곳은 당일 오후 3시부터 예약이 가능하고, 엄격하게 선착순으로만 진행되며 3시 30분이면 모든 예약이 끝난다고 한다. 전화부스를 통해 들어가는 통로는 나만 아는 비밀이지만, 널리 퍼트리고 싶다. 이런 인간의 기본 심리가 바로 소셜화폐이다.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넘긴다. 스크롤을 내리며 모르는 사람을 훔쳐본다. 우리가 쉴 새 없이 인증하고, 공유하는 것도 소셜화폐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좋아요 라는 새로운 형태의 무형자산이 동기를 높이든지, 집착을 부추기든지. 쌓여가는 빨간 하트가 내 텅장의 그것보다 더 실물처럼 느껴진다.
냄비근성이라는 말은 대게 좋은 의미로 쓰이진 않는다. 우리는 쉽게 잊히는 것을 예상하기에 타오르는 열정을 신뢰할 수 없다. 비범함은 입소문을 유발하지만, 그것을 지속시키는 힘은 ‘쉽게 떠오르는’데 있다. 저자는 이를 “계기”라고 부르며 질문한다. 디즈니랜드와 허니 너트 치리오스(미국의 유명한 씨리얼) 중에서 어느 쪽이 사람들 입에 더 많이 오르내릴까?
저자는 심리학자 그레인 M 피츠시몬스와 ‘사람들이 과일과 채소를 더 많이 섭취하도록 유도하는 실험’을 했다. 우선 교내 학생들에게 20달러를 주고, 자신이 먹은 하루 세끼 식단을 기록하게 했다. 아무거나 자기가 먹은 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2주가 지나고, 연구팀은 학생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다른 연구원을 보내서 새로운 실험을 했다. 대학생 대상의 ‘공중보건 증진을 위한 슬로건‘에 대해 의견을 묻는 실험이다. 학생들이 슬로건을 잘 기억할 수 있도록 수차례 보여주었다. 2그룹으로 나누어, 두 종류의 슬로건을 각 그룹에게 보여주었다. 1) 하루에 5가지 채소와 과일을 섭취해 건강한 삶을 누리세요. 2) 교내 식당에 갈 때마다 식판에 5가지 채소와 과일을 담으세요. (단, 슬로건은 슬로건일 뿐, 강요는 없다.)
학생들은 2주 전, 20달러를 받은 시점부터 계속 자신의 식단을 기록 중이었다. 과연 어떤 슬로건이 이들의 식생활에 영향을 주었을까. 저자의 질문에 2)번 집단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했다. 특히 1) 번 ‘건강한 삶’이 담겨있는 슬로건이 매력적이라고 답한 비율의 절반도 안 되었다. 2) 번 그룹은 해당 슬로건을 진부하다고 여기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행동을 분석했을 때 1) 건강한 삶을 누리세요 라는 슬로건을 본 학생들의 식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식판’ 슬로건을 보여준 학생들이 과일 및 채소를 이전보다 25%나 더 먹기 시작했다. 교내 식당에서 식판 슬로건이 계기로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계기는 특별해 보이지도 않고, 진부하기에 흥미와는 거리가 멀 수 있지만, 오히려 일상의 입소문에는 더 효과적이다. 계기는 노출, 빈도의 영역이다. 단 조건이 있다면, 맥락과 잘 연결되는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디즈니 랜드보다 치리오스가 사람들의 입에 더 많이 오르내린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매일 동일한 시간대에 언급 회수가 최고치를 기록한다. 디즈니 랜드는 평생에 한두 번 갈까 하지만, 아침식사는 매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굵고 짧게 잊힐 것인가, 가늘고 길게 기억될 것인가. 시시한 화제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전염의 기본기’ 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사회적 증거'라고 부르는데, 이는 특정 상황에서 ‘알맞은 행동을 나타내고자 할 때’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경향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친구 따라 강남을 향했고, 끼리끼리 놀아왔다.
모방심리는 생활의 여러 분야에 적용된다. 인간에게는 타인을 모방하려는 습성이 있다. 친구끼리 서로 비슷한 옷을 입고,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이 많이 주문하는 요리를 선택하고, 가까운 친구가 금연을 하면 덩달아 금연을 결심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학의 음주에 관한 부조리는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꺾어 마시냐는 선배의 빈정거림’은 우리나라 얘기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학생들도 음주문화 때문에 괴로워한다. 코린 조하 네슨은 애리조나 대학 임상 사회복지사인데, 대학생들의 알코올 남용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그는 알코올의 위험을 알리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학생들에게 음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술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불편하다고 응답했다. 평범한 어른들처럼 가끔 술을 마시는 것은 좋지만 일부 학생들처럼 폭음이나 과음을 하는 것은 꺼려했다. 룸메이트가 주사를 부리거나 변기에 토할 때 머리를 잡아주는 경험도 정말 불쾌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대중적 가시성’을 말한다. 남들이 ‘볼 수’ 있도록 끄집어내면, 그것은 퍼질 확률이 높아진다. 코린 조하 네슨은 학생들의 속마음을 신문기사를 통해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과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말한 것이 아니라, 주량이 네 잔 이하인 학생이 69퍼센트나 된다고 사실만을 말했다. 나만 술을 좋아하는게 아닌 것을 알게 된 순간, 애리조나 대학의 과음 문제가 30퍼센트가량 줄었다고 한다.
“간섭보다 더 듣기 싫은 게 충고예요.” 어느 초등학생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몸에 좋은 세상의 모든 말은 그 맛이 너무 쓰기 때문에, 진작 사라졌겠지만, ‘이야기’ 덕분에 긴 세월 동안 전해져 오고 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은 양치기 소년 우화를 통해 완충되었고, “무슨 일을 하든 허투루 하지 말라.”는 격언은 아기돼지 삼 형제 이야기를 통해 재밌게 머릿속에 남았다. 쓴소리는 이야기와 합쳐진 덕분에 지혜(wisdom)라고 불리며, 오늘도 구전된다.
저자는 입소문이 어떻게 구전되는지 이야기라는 장치를 통해 설명 한다. 사람들은 광고를 쉽게 믿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전해준 이야기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어느 특정한 사람이 구체적인 경험을 제시하면 의혹을 제기하기가 힘들다. 또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이의를 제기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를 찾을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야기에 한번 몰입하면 그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만 생각하다가 주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
우리는 이를 ‘관종’이라 쓰고, ‘어그로’라 읽는다. 2004년 8월 16일 캐나다 출신 론 벤심혼은 아테네올림픽에서 다이빙대 가장자리에서 섰다. 수영복 차림도 아니었으며, 발레복을 입은 채 다이빙에 실패하고 그 상황을 즐겼다. 사실 그는 캐나다 대표선수가 아니라 올림픽 경기에 불쑥 끼어든 불청객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인터넷 카지노 ’ 골든 펠리스 닷컴’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도 아무도 카지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은 수영장에 뛰어든 스턴트 행동에 대해서만 이야기했고,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최악의 게릴라 마케팅으로 꼽는다. 론의 도발적인 행동과 카지노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골든팰리스 닷컴’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었다.
덧붙여 '감성'과 '실용'에 관한 범주까지 포함해 총 6가지의 계약서가 있다. 물론 이 6가지의 계약을 다 충족하면 좋겠지만, 넘침은 부족하니 못하다. STEPPS는 여섯가지 핵심 원칙이다. 전부가 아니라 몇가지만 반영되더라도 사회적 영향력을 장악해 입소문을 유발할 수 있다. 자, 그럼 어떤 계약서에 서명하시겠습니까.
존버거의『컨테이져스』(문학동네,2013)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