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내 맘이 그렇게 거창했나요?

조승연의 『시크:하다』

by 산문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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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좋다. 예스도 노도 소신 있게.”(2001)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원증권’의 광고문 구이다. 이 말이 어찌나 강했던지 카피(copy)는 내 무의식을 지배했다. 나는 지금껏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소신, 그것이 주관인 줄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주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이 정한 적령기에 맞춰 학교 다니고, 군 복무를 마치고, 취업하고, 결혼을 바라본다. 남들 가는 대로 가지 않는 삶은 ‘아니오’의 문제였다. 부러진 팔을 감싸고 있는 석고붕대처럼 주관에 대한 내 무의식은 뻣뻣했고, 주관을 내세운다는 건 엄청나고 거창한 일이었다. 내 주관대로 선택하자니, 세상엔 위험한 것이 너무 많았으며, 주관을 말하자니 버릇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주관을 펼치기엔 나는 너무 연약했고, 우유부단하며, 결단력이 없었다.

프랑스 문화를 들려주는 인문 관찰 에세이, 조승연의 『시크:하다』(2018, 와이즈베리)는 흑과 백으로만 차있는 내 주관에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주었다. 책의 도입부, 저자는 “내 인생을 두고 스로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나의 이야기. 이것이 바로 주관이다. 그는 주관에 대해 “끊임없이 돈이 없으면 초라하고, 권력이 없으면 억울해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에 우리가 들이밀 수 있는 최고의 방패(p.6)”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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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프랑스 사람들이 주관이 강하니까 여러분도 이런 선진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저자는 프랑스가 한국보다 대단히 훌륭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본 프랑스가 프랑스의 전부도 아니라고 전제한다. 다만, 우리는 그의 눈을 빌려 파리지앵의 문화와 생활, 그리고 철학을 읽는다. 남의 세계를 통해 나의 세계를 멀리 놓을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도 통찰이지 않을까.


언어는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자주 쓰이는 몇몇 신조어를 통해, 주관에 대한 사회의 냉소를 체감한다. 뇌피셜(뇌와 Official의 합성어로 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사실이나 검증된 것인 양 말하는 행위,나무위키)과 킹리적갓심(합리적 의심을 조롱하는 신조어로, 강조의 의미로 king과 god을 섞어 넣었다, 나무위키)이 대표적이다. 개인의 생각(#주관)에 공식을 (#객관) 요구하는 문화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주관의 묘미를 굳이 말해야 한다면, 나는 경험에 방점을 찍고 싶다. 프랑스 유학시절, 낡은 집에서 살았던 저자의 경험과 성찰이 그렇다. 프랑스인들은 낡은 것을 멋으로 인식하고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들의 주거관은 실용적이지 않아도 편안함이 느껴진다. 편리와 편안을 구별하며 프랑스인의 불편함을 관찰하는 저자의 시선 때문일까. 사람은 새롭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는 한편, 어려움을 겪을 때는 편안해지기 위해 익숙한 것을 찾는다(p.31)고 덧붙인다. 우리가 힘들 때 부모를 그리워하고 고향집을 생각하고, 애착 인형을 못 버리는 이유가 그런 것들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프랑스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그들의 강한 주관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미식문화는 주관을 만나 예술이 되었다. 그들의 음식 문화는 학문을 넘어, 종교에 버금간다. 프랑스의 인간관계는 이기적인 것처럼 보인다. 차가울 정도로 거리감을 두는 우정, 남의 자식 대하듯 무관심해 보이는 육아를 보면 그렇다. 그러나 이런 거리감은 주관을 만나, 조화로운 관계가 되었다. 왜 그런지는 저자의 탁월한 스토리텔링에 맡겨보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의 명대사를 빌려왔다. 리어가 (치매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어가며, 한탄하는 독백이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자의 푸념에 불과할 수 있지만, 삶을 방황하는 중이라면, 누구에게나 묵직하게 와닿는 말이다. 난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시크한 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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