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공포증

by 산문꾼

‘우리는 무슨 사이일까, 너한테 나는 무엇인가.’



연락이 안 되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구질구질하니까. 9시가 넘었다. 18분이 넘었는데, 카톡에 1이 그대로다. 사실 답장이 와도 문제긴 하다. 그녀의 답장은 길어 보이긴 하나, 그중의 2/3는 'ㅋ'으로 찼으며, 이야기를 이어갈만한 내용은 없었다. 누가 얼마나 연락을 더 많이 하느냐,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을 수 있냐는 실존적 문제 앞에서, 아쉬운 쪽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아쉬움에도 정도가 있는 법, 결국 남자랑 왜 이 시간에 둘이 있는 거냐 물었다. 시간 간격을 둔 1이 이제 2개다. 바로 답장이 왔다.

‘아니 얘가 무슨 남자야ㅋㅋㅋ얘 지금 존나 진지해서 갈 수가 없어ㅋㅋㅋ개웃겨ㅋㅋㅋㅋㅋ'

그녀의 쿨내에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당연히 집엔 언제 가냐고 물어보진 못했다.



대체적으로 첫 만남은 아름답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아름답게 왜곡된다. 나는 운명이라는 벽 뒤에 숨어 괜찮은 기억만 남기고 싶었다. 그러니까 하필 그 시간과 그 장소에 그녀가 나타났고, 첫눈에 반했다는 달달구리한 환상 말이다.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닌 걸 아니라고 짚고 넘어갈 때 생길, 사랑의 균열이 내 탓일 것만 같았다.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한 건 복종에 가까웠다. 이해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관용이니까.



상상은 더 큰 상상을 낳게 되고, 의심은 의식을 좀 먹어가기 시작한다. 다른 놈들의 눈도 다 비슷할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남자 친구 있느냐 물을 테고, 연락처를 얻은 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밥, 커피, 그리고 술상을 차려줄 것이다. 그리고 예쁜 여자랑 연락하고 있는 자기 스스로가 잘난 줄 알겠지.



하지만 너의 그녀가 된 순간,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신선함도 상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누군지도 모르는 놈을 저주하는 애증은 복잡하다. 그것 참 얄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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