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깨어나지 않는 거야? 그리고, 왜 계속 연애중인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 판국에 그녀는 20살의 신입생 환영회 모임자리에 북적이고 시끄러운 사람들 사이에 껴있었다.
너무 혼란스럽고 너무 시끄러워 잠시 자리를 급히 빠져나와 익숙한 풍경 뒤의 화장실로 다급히 달려갔다.
“이…이게 꿈이야? 아니, 그러기엔 너무 생생하잖아. 이 감촉, 느낌, 소리. 이걸 다 뭘로 설명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찢어질듯이 카오스 상태에 빠진 그녀는 머리를 쥐어뜯다 이내 화장실에 작게 달린 거울을 보았다.
‘아… 정말… 촌스러웠던 20살의 내 헤어스타일과 유행 지난 듯 안 지난 뿔테안경에 앞머리는 심지어 일자 머리라니….’
흑역사로 생각했던 그 당시의 어설프지만 세보이고 싶었던 화장과 옷차림, 머리 스타일은 정말 최악이었다.
‘이게 이쁘다고 생각 했던거야…?’
그녀는 이내 다시 이마를 집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후… 꿈에서 깨자.’
…
……
가위 눌릴 때의 느낌처럼 온 몸에 힘을주고 발악을 해봐도 요지부동.
‘흡…!!!!제발…제발, 이젠 좀 깨라 제발.’
…
..
“왜!!! 왜 안 깨는거야!!! 하… 미치겠네 정말.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20살, 20대의 모습으로 왜 온거야 대체!! 이게 꿈이 아니면 뭔데…!!”
신과의 싸움이라도 하듯, 그녀는 벽에 손을 강하게 내리치며 외쳐댔지만 여전히 화장실 바깥의 시끄러운 술 게임하는 소리들만 울려퍼질 뿐이었다.
“아… 진짜… 후… 아씨, 몰라!!! 될 대로 돼라지 뭐, 언젠간 깨겠지 후…!!!”
포기한 마음으로 이내 그녀는 다시 화장실을 빠져나와 본인의 자리였던 곳으로 돌아가 앉았다.
‘열 받는 김에 술이나 실컷 먹으면 깨겠지 뭐.’
“오!!! 서정아, 어디 있다가 이제야 오는거야~! 게임 빠졌으니 벌주 한잔해~!!!”
‘윽… 과대 오빠다. 꼰대스러운 이 남자. 재수생이라 한 살 많다고 아주 주접을…’
“한잔해~!한잔해~! 동~~구 밖~~~과수원~~샷!!!”
단체로 난리다.
갓 20살이 된 아이들의 끓어오르는 젊은 피란…
스물스물 올라오는 기억이 퍼즐 조각처럼 끼워 맞춰지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흠칫 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저… 선배 지금…2008년 맞죠…?”
“뭐야, 너 벌써 취했냐? 그럼 뭐 여기가 2024년이라도 되게? 얘들아~~~ 유서정 신입생이 선배 보다 먼저 취하셨단다~~!!!!!”
유독 텃세와 꼰대질하는 선배들만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선후배 관례란…그래봤자 20살, 21살, 22살 애기들일 뿐인데 그땐 왜 그리도 한 살 차이 선배들이 높게만 보였는지.
‘흠…지금 2008년이 맞으면… 그 자식도 여기 있었는데… 어디갔지?’
두리번 거리던 그녀.
한참을 시글벅쩍한 사람들 사이사이를 살펴보더니 이내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그녀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르 불의 화신이 된 것처럼 독기가 찬 눈빛으로 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20살의 윤서정 회상]
19살, 그러니까 20살이 막 되기 직전, 입학은 3월.
고등학고 졸업식을 마치고, 입학까지는 시간의 텀이 생기는 시기.
그때 쯤이면 다들, 입학하게 될 학교의 사이트에 들어가, 모임관련 온라인 SNS 활동에 빠져 있을 시점이었다.
누구보다도 인맥을 빨리 만들어 두어야, 낯설고 어려운 환경에 금방 적응할 수 있고, 좀 잘나간다는 선배의 줄을 잘 타기 위해 다들 한 사람이라도 더 친해지려 발악하며 바삐 움직인다.
싸이월드라는 플랫폼이 최고조로 유행할 때였기 때문에, 싸이월드로 친구를 맺고, 탐색하기 바빴다.
네이트온이라는 채팅 SNS로 같은 학교 같은 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조리 친구요청을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다 어떤 남자 선배와 많이 친해졌는데, 일명 ‘낚시’라는 것을 해서 친해지게 된 케이스였다.
‘낚시’
선배가 신입생들 신고식하듯이 하는 놀이 같은 거였는데, 같은 신입생인 척하고 친해지고 말을 놓으라고 하며 다가갔다가, 어느정도 꽤 많이 친해졌을 때쯤, 짜잔-! ‘나 사실 네 선배다.’
하는 그런 유치한 신고식 같은 거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리고 철 없는 나이.
이러저러해서 그 남자는 선배라는 사실을 밝혔고, 재수를 해서, 실질적으로 한 학년 선배이지만 나보다는 2살이 더 많았다.
그 남자는 유독, 나에게 하루하루 늘 안부를 물었고, 내가 지방쪽에 살고 있었을 때라, 그 남자선배는 입학 전 정기 모임 때, 서울이 낯선 날 에스코트 하며 학교 안내도 해주겠다 했다.
자연스레 우리 둘은 만나기도 전에 이상한 감정이 꽃피우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그 남자의 섬세한 모습과 날 다정히 챙겨주는 모습에 ‘이것이 성인의 연애인가.’라는 환상을 갖기에 충분했다.
순수하고, 아무런 경험이 없고, 때 묻지 않은, 그런 꽃봉우리 같았던 나는 의심도 무엇도 할 생각조차 없었다.
입학 전 모임에서 그와 나는 2달정도간의 채팅으로 서로를 보고싶어하고 그리워하다 결국 바로 사귀기로 했다.
그러자, 입학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07학번 여자 선배들 사이에서, 그 남자가 꽤나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저 불여시 같은 게, 입학 하기도 전에 선배 꼬여냈다’
라는 식으로 괴소문이 돌면서, 여자 선배들 사이에서는 날 이미 입학하기도 전에 ‘찍.었.다.’
그렇다.
찍혔다.
내가 꼬여낸 게 아니라, 사실 그 남자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쉬하고 꼬여냈는데, 좀 억울했지만, 솔직히 중고등학생 시절, 일진들한테도 딱히 꿀린 적 없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중고등학교때 찐따였던 애들이 꼭, 대학가서 신분 세탁하듯, 여왕 군림 하듯 행세하는 꼴이란…’
솔직히 좀 가소로웠다.
실제로 다들 찐따같은 안경을 쓰거나, 제대로 세련되게 꾸밀 줄도 모르는 그런 범생이 같은 스타일의 여자 선배들이 지독하게 뒤에서 뒷담화를 해댔다.
남자 선배들에게도 나의 소문을 더 갈 수록 부풀려서 이간질을 했다.
저런애 상종하지 말라고. 불여시라고.
입학 하고 나서의 모습은 당연히 상상이 되었다.
참 불쾌하고 불편스러웠지만, 난 솔직히 말해 잘못한게 없는데 꿀릴 것이 뭐가 있겠냐는 마인드로 당당하게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건물앞 학생들이 무리무리 지어 휴식을 취하거나 수다를 떨곤 했는데, 여전히 그 못된 여자선배들은 내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았다.
그러자, 문득 생각이 났다.
“선배가 지나가는데 신입생이 인사도 안하네~!!!”
라고 걸핏하면 신입생들 잡던 여자선배들이, 내 인사는 무조건 무시하던 모습이 웃겨서, 어느 날, 괴소문이 갈 수록 부풀려 지는것에 나도 열이 받아 에라 모르겠다하고 외쳤다.
그 사람많은 곳 가운데에 서서,
“선배가 신입생이 인사 안한다고 맨날 텃세 부리더니, 막상 신입생이 인사하는데 대놓고 무시하고 씹는 행위는 무슨 논리이죠? 어디서 찐따 생활하던 애들이 꼭 일진 놀이하는 게 웃기다~웃겨!!! 과거 같은 학교였던 동창이라도 만나면 입 다물거면서~!!!”
순간 사람들의 모든 이목 집중은 당연히 나였다.
그런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 선배 무리들에게 시선들이 꽂혔다.
이내, 여자선배들은 쪽팔렸는지 후다닥 다른 곳으로 도망가 사라진 후였고, 수근수근하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와~~!!!대박~~!!! 쟤 윤서정이란 애 아니야? 깡 장난아니다!”
같은 동기였던 남자 선배들은 곧, 나의 그런 외침에.
“와~!!! 패기보소!!! 잘했다!!!”
눈치를 살피니 그 여자 선배들은 남들의 시선에도 그저 그런애들이 ‘나대는’ 그런 사람들이었을 뿐이었던 것 같았다.
어차피 찍힌거, 여차하면 머리채라도 잡고 싸울 각오를 했었다. 선배면 선배답게 행동하라고 알리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그 뒤로 나의 학교 생활은 참으로 편해졌다. 그 남자와 편하게 연애를 했으나, 그 남자는 그 당시 날 대변해주는 행동은 없었는데, 그 땐 미처 그걸 생각을 못했다.
왜 그런 행동을 일찍이 알아채지 못했을까. 어리석다.
[회상 끝]
<“아니, 근데…왜 나 여전히 그 남자와 연애하고 있는 상황인거야?!”>
꿈이든 시간여행이든, 과거로 왔으면 망했던 연애는 당연히 피하거나 다시 바로 잡아야 하는거 아냐?! 근데 왜…
<내 연애상대를 못 바꾸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