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림 Dec 16. 2024

프롤로그-죽음으로부터 ‘부추꽃’처럼 찬란하게

Season1. 나의 겨울, 나의 유품 : 필름


Season1. 나의 겨울, 나의 유품 : 필름



  나는 손목을 그었다.


내 나이32살에 지방 한적한 동네에 자리잡고 있던 엄마의 집으로 다시 합가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엄마의 집으로 오면 그동안 지치고 너덜너덜해져버린 내 몸과 정신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까 하는 아주 작은 나만의 동아줄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예상하기도 했다. 이 곳에 내려온다 해서 내가 엄마로부터 위로를 받고, 다시 기운차릴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 기어코 나는, 더 이상의 살아가야하는 이유도, 가치도 모두 부질없다 여기고 그대로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고선 소리쳤다.

  “나 이제 정말 더는 못버티겠어. 엄마. 미안하지만. 나 정말 살고 싶지가않아. 아니, 그냥 정말 죽어야 이 지옥이 끝날 것 만같아. 제발 나좀 보내줘 이제.” 그렇게 울며 칼을 집어들었어.

  너무 놀라 벌벌 떨고 있는 엄마는 필사적으로 내 죽음을 막으려 했지.더 있다가는 엄마도 정말 죽일뻔 했어. ‘아, 이래서 존속살인이 벌어지는구나. ‘하고 깨달았지. 정말, 당연이 나쁜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해야지만 되는지 난 그 입장까지 되보니까 그제야 알겠더라. 사람의 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모든 끈이 탁- 끊어지는 순간.

  정말 모든 삶을 진심으로 포기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한한 지옥의 굴레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필사적으로 막은 엄마 덕에 내 기운은 모조리 빠져버려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렀고, 그렇게 병원으로 갔지. 그 때부터 나는 내 스스로, 자발적으로 정신과를 찾아서 약을 먹기 시작했어. 그렇지 않으면, 언제 내가 또다시 자살하기위해 내 스스로에게 무슨짓을 벌일지 몰랐거든.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엄마와의 갈등이 깊어서였는데,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아. 쉽게 말하면 내 트라우마가 엄마로부터 거의 대부분 대물림 된 거였거든.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를 더는 멈추게 할 수 없어서, 그냥 내가 약을먹고 나만 순한양이 된다면. 그나마 버텨질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너무 서럽고 초라한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속에서 난 정신과 약과 함께 지옥속에서 발버둥쳤어.

  근데 어느날, 약기운에 너무 어지러워서 제대로 앉아있거나 서서 걷지도 못하는데, 집앞 대문 밖으로 나왔을 때, 그 미약한 정신상태에서도 내 눈에 또렷하게 들어 오는 것이 있었어.

  부추꽃이었지. 여름이 되던 해에, 나는 거의 모든 삶을 살아가기위한 목적도, 의욕도 다 놓아버리고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었을 그 때에, 하얗게 피어오른 부추꽃을 바라보았어.

  우리집 옥상에는 욕조를 개조해서 쓰고 있는 큰 부추화분이있는데, 부추꽃은 정말이지 하얗고 콧대높게 힘껏 피어오르다, 가을쯤이 되면 서서히 그 모습그대로 말라가지. 근데 그 모습 자체도 내 눈엔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부러지지도 않고, 찬란했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채 마른 꽃이 되었고, 까만 작은 씨앗 알갱이들을 무수히 남기고 다음해를 기약하며 다시 흙으로 돌아갔어.

  그 씨앗들이 너무도 많아서 우리집 옥상으로부터 벽 옆면에 있는 담벼락사이로도 마구 떨어졌나봐. 근데 아무 손도 타지 않은 그 씨앗들은, 그 담벼락 사이로도 다음해에 아주 보란듯이 흐드려지게 꽃을 피워냈지.

  그러다 생각이 들었어. 내 인생이, 저 부추꽃처럼 한 때만 찬란하더라도 행복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꿋꿋이 버티며 죽음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음해를 기약하며 다시. 또다시, 피어오른다면 지금의 내모습과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반대로는 자책도 했지.

  평소에는 눈길도 안주는 그런 존재인 부추꽃이, 들꽃이 어찌 저리도 악착같이 생명과 죽음사이를 오가며 아무런 불만도 없이 자기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저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지.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못하고 있는지 말야. 그 느낌이 어느샌가 내 마음안에 씨앗이 되어 피어버렸나봐. 부추꽃처럼.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아보기로 했어. 나의 죽음, 그동안의 과거는 그대로 놓아주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 힘껏 피어오를 꽃을 위해 살아보기로.

  그때부터 내마음에 저 부추꽃처럼 살기위해 씨앗을 가득 담아내기 시작했어. 지금, 상황들은 모두 다르지만, 죽음을 앞두고 갈망하는 많은 이들이 있어 나처럼.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그래도 이면에는 작은 동아줄처럼 살고싶은 마음이 있어 펼쳐본거겠지. 그런 그대들을 위해 썼어. 어떻게 죽고, 어떻게 다시 살아나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죽고싶은건, 더이상 기댈 곳도, 의지할 사람도, 믿을 그 무언가도, 용기도, 앞으로 향하기 위한 목적도 목표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일거야. 그래서 반대로 죽고싶은 인생이 아니라, 진짜 살고싶은 인생을 원해서 ‘죽고싶다’라고 외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으니까. 죽고싶은게 아니라, 그저 지금 내가 처한 이 끔직한 인생을 새롭게 바꿔 다시 인간답게 사는 인생으로 만들고 싶었어.

  그걸 원한다면, 우리가 상처를 마주하는 힘을 길러야해. 그리고 날 괴롭혔던 과거를 놓아주어야해. 막막하지? 근데 이젠 내가있어. 난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대는 이제 내가 있으니까 땡잡은거야. 그러니 제대로 죽는법을 배우고, 새 인생을 살아보러 같이 가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