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_ 추위에 갇힌 밤
엄마는 지독한 우울증에 갇혀 살았다.
그런 엄마를 늘 유심히 관찰하는 게 일상이었다. 엄마는 늘 언제라도 저 베란다를 열고 뛰어내릴 것만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늘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을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어한 사람이었기에, 항상 술이 엄마 몸 곳곳이 지배하고 있었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늘 유심히 지켜보던 꽃집에 들러, 꽃이 아닌 파아란 이름모를 선인장 화분을 꼬질하게 모아온 용돈을 내밀어 샀다. 꽃은 너무 쉽게 져버리고, 이토록 추운 겨울에는 당장이라도 꽃잎을 떨굴 것만 같았다.
선인장은 뭐, 물을 안주어도 되고, 따뜻한 집안 내부에 잘 두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엄마가 그렇게라도 살아내길 바랬던 마음이었다.
집에 들어왔는데, 집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엄마는 왜인지 늘 있던 거실자리에 없었고, 썰렁한 기운만 늘씬 풍기고 있었다. 새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엄마는 도저히 그런 인생을 이어나갈 수가 없어 종교의 힘을 빌리기 위해 산속동네에 있는 교회에 며칠 머물다 올 것이라고 했다.
그날 밤, 폭설이 대차게 내렸고, 내 마음도 폭설로 뒤덮여 차갑게 식어 죽고말았다.
그렇게 다정하게 친근하게 잘 따르고 재밌었던 엄마보다 한참 연하의 이 새아빠는 나를 여자로 보았나보다. 난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그래서일까, 나는 처음보는 누구에게든지, ‘처음 봤을 때 너 엄청 차가워 보였어.’라는 소리를 밥먹듯이 들었다.
맞아, 겨울의 사람이었다.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사람. 그러나, 원래 내 속 알맹이는 따뜻한 장작을 피워 따뜻한 내음이 풍기는 사람인데, 다들 참 겉모습을 보며 쉽게 판단한다.
태몽은 엄마가 꾸었는데, 정말 환한 초승달이 비추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나는 빛이란 빛은 죄다 좋아한다. 별과 달, 가로등,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조명 등등. 본능적으로 빛이 좋았다. 단, 밤에 비치는 빛에 한해서만.
반대로 낮이 싫었다. 낮에는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별과 달이, 조명들이 제대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고요한 어둠속에서 환히 비추는 그런 빛이 좋았나보다. 어두워야만 그 존재들이 더욱 빛을 발하니까.
뭐, 이런저런 이유 덕에 자연스레 나는 불면증을 달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자연스레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스산하게 부는 칼바람이 숨을 막히게 하고, 뼛속까지 날카로이 베는 것 같아 참으로 싫어했다.
나의 겨울은 그러했다. 누구는 여름이 싫고, 누구는 가을이 싫고, 누구는 봄이 싫겠지. 그래도 그 안에서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모든 겨울이 싫기만은 한 것은 아니겠지 누구든.
소복이 쌓인 아무도 밟지 않은 그 포근한 눈 더미에 내 한발짝을 콕, 하고 조심스레 찍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뭐랄까,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하얀 백지에 누구보다 제일 먼저 무언가의 강렬한 도전을 시도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