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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림 Dec 16. 2024

갇혔다/ 빵집을 지날 때마다

트라우마와 향수


갇혔다



그 날 이후로, 굳게 믿었던 믿음, 내 마음에 남아있던 따뜻한 온기는 모조리 사라져 없어진 뒤였다. 새아빠에게 받은 배신감보다, 가장 중요한 위기의 그 순간에 엄마가 내 옆에 없었다는 배신감이 더욱 컸다.

  엄마는 며칠 뒤 폭설 때문에 원래 계획보다 더 늦게 집으로 돌아왔지. 그러고는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가, 술담배도 모두 한 번에 끊고 새사람으로 태어난거 같아. 천국을 본거 같아. 이제 생일도 12월 19일로 바꿀거야. 엄마는 새로 태어났단다. 이제 안심해도 돼.”

  엄마에게 가장 큰 그 어느 것보다 제일 큰 배신감이 들었다.

‘천국…을 보았다고…? 다시…태어났다고…?나는 그날 죽었고 지옥에 빠진 날이었는데…?’

  근데 가장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 사실은, 말을 할 생각도, 내가 겪은 시련을 말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가장 환하게 미소를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엄마가 죽는 것 보다, 내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을 안한 건, 그래.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기에 결정한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배신감과 절망이라는 키워드로 상처라는 틀 안에 그대로 갇혀버릴줄은 몰랐는데.

폭설이 내리던 그날 밤 이후, 그렇게 지옥의 삶을 시작했다. 완전히 갇혔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그때의 나는 내가 갇힌 줄도 몰랐다. 엄마가 살아있는 게 더 없이 다행이라서.]






빵집을 지날 때마다



  어린 꼬꼬마 시절, 이상하게 빵, 케이크, 쿠키 등등 군것질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엄마나 아빠와 동네 빵집을 지나갈 때마다, 그 달콤한 향기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고 통유리로 된 진열장을 정신놓고 빤히 쳐다보고는 했다.

  늘 발걸음을 재촉하던 부모님은, 알 턱이 없었겠지만. 그저 어린애가 케이크가 먹고싶어 고집부리는 거로 생각했지만, 사실 난 케이크에 장식용으로 꽂혀져 있던 촛불이 너무 포근하게 아름다워서 였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산타클로스 인형과 알록달록 크리스마스 장신구들, 스노우볼, 오르골이 내 눈에서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생일이 되면 늘 케이크에 촛불을 내 힘으로 혼자 암만 후-후- 대차게 불어도 꺼지지 않아 엄마아빠가 웃으며 대신 꺼주던 그 촛불. 그리고 후- 꺼지는 순간의 양초 타들어가던 냄새.

  그게 그렇게나 나에겐 가장 큰 행복이자 선물같았다. 아직도 난 케이크만 보면 촛불이 늘 연상되어, 가장 큰 축하를 받는 것 같은 기분좋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현재도 구충약이라도 먹어야 되나 싶을정도로, 양초 끄는 냄새를 심각하게 좋아한다.

  겨울에 유일하게 가족 단위로 행복함을 느꼈던 순간이라그런지 머릿속 필름에 꼭꼭 저장되어있다. 촛불냄새와, 크리스마스, 케이크, 장신구, 스노우볼, 오르골.

  지금도 언젠가는 많은 스노우볼과 오르골을 컬렉션별로 모아 나만의 프라이빗한 진열장에 수집하고 말리라. 하고 다짐중이다.

[‘가족’이 그립다. 아주아주 꼬꼬마시절 느꼈던 몇 안 되는 행복과 사랑이라는 감정, 그만의 특별한 느낌. 가끔 따뜻한 손길이나 위로가 필요할 때, 저마다 어느날의 어느순간에 느껴보았던 행복했던 추억,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특유의 따뜻한 느낌말이다. 지금도 자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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