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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림 Dec 17. 2024

귤서리, 나의 산타클로스

도망, 그리고 뺏긴 나의 아빠




귤서리



초등학생 4학년부터 중학생 2학년까지 제주도에 살았었다. 너무 어려서 뭐 어른들의 사정이나 어떤 이유로 제주도로 떠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덕분에 비행기도 어린나이에 타본 경험으로 새로사귄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도 생기고 좋았지.

  바다도 아마 처음봤던 것 같다. 제주도는 참 따뜻했다. 겨울인데. 내가 겨울은 싫어하지만, 눈 내리는 건 어린아이의 순수함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좋아했기에, 제주도에서는 눈이 쌓이는 걸 쉽게 보기 힘들단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서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새로 전학간 초등학교는 나름 신설 초등학교인데다, 집에서 그대로 쭈욱 오르막길로 10분 정도만 직직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학교여서 길치였던 아무개는 신났더랬지.

  등교길 오른편에는 동네 길의 끝자락 부분이어서 그런지 등교길 내내 감귤밭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뭐 딱히 담벼락이나 철조망 같은 건 없었을 순수한 시절이랄까.

  같은 아파트 가까운 곳에 사는 새로사귄 친구와 매일 등하교를 할 때마다, 귤밭에 쏙- 들어갔다가 재빨리 3-4개를 서리해서 껍찔을 까서 냠냠 먹으며 다녔던 추억이 있다.

  어느날 하도 많이도 따먹어와서 그런지, 아침 댓바람부터 귤밭 주인아저씨가 잠복해 있었던 것이 아닌가.

  “늬들이구나! 네 이녀석들! 감히 허락없이 주인 몰래 귤을 훔쳐?” 하고 소리치더라고. 너무 화들짝 놀라서 우리 둘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몰래먹는 겨울에 따먹는 그 감귤이 참 꿀맛이었는데. 그 뒤로 서리를 하지 못했다. 또 나타날까봐 무서워서.

[도망. 내가 무언가 잘못했다고 느낄 때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로 숨는 행위. 서리를 하지 않고, 정정당당했다면 당연히 도망칠리는 없었겠지? “근데, 왜 성인이 된 현실의 나는 자꾸만 뭐가 그리 두려워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걸까. 

내가 잘못한게 아닌데도말야.”]






나의 산타클로스



  누구에게나 아주 어릴적 동심의 세계는 있을 것이다. 유치원 때, 마침 생일자들을 모아 한달에 한 번씩 축하파티와 소소한 생일전물 전달식하는 문화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겨울에 태어난 아이이기에, 크리스마스, 신정 등등의 빨간날 연휴 덕에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미리 생일축하파티를 했다.근데말야, 이상하게도 나를 가운데로 놓고 사진 기념을 찍어주질 않나, 선물을 자꾸만 유독 크고 많이 전달을 해주지 않나 하더라고.

  유치원생이었으니 굉장히 어렸는데도 묘-한 기분탓을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선생님들이 나를 한번 씩 대놓고는 아니지만, 스리슬쩍 눈치보듯 보더라고?

‘아,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라며 느끼는 그 순간, 내 눈앞으로 갑자기 나타난 산타클로스.

  “안녕, 친구들 허허허. 나는 산타할아버지란다. 생일 뿐아니라 마침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선물을 더 많이 나누어 주려고 왔단다 허허허.”

  놀라지 않았다. 진짜 익숙한 향기. 그리고 진짜 많이 들어본 저 목소리. 아빠였다. 꾸민다고 꾸몄는데…기가차서 웃음도 안나왔다.

 근데 나도 모르게 ‘아빠‘, 하며 눈물이 왈칵 나와버렸어. 딸이라서 달려왔고, 딸이라서 다른애들보다 더 좋은선물을 주고 싶었던 걸 느꼈거든. 아빠품에 대한 그내음이 너무 좋아서 항상 아빠에게 업어달라고 안아달라고 조르곤 했었지.

  [근데1. 아주훗날, 고등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은 하셨지만, 한번 씩 아빠가 왕래는 하셨거든. 아, 이때는 엄마가 새아빠와 이혼하고나서 제주도에서 다시 지역으로 이사왔을 때야.

근데2. 나를 등교길에 태워준다던 아빠 차 조수석쪽에, 알록달록한 두개의 선물상자가 있더라. (엄마랑 다시 합친다고 거짓말한 채 몰래) 새집살림 하고 있는 여자네 자식이 둘이었는데, 그아이들 선물이었어. 나는 친딸인데. 이혼하신 이후로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 그렇게 나의 산타클로스는

다른 누군가의 산타클로스가 되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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