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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

절대적인 자신만의 신념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편해진다.

by 나림


6화. 도그마

도그마(Dogma)라고 들어본 적 있는가?

도그마란 원래 의미로는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신념이나 교리>를 뜻한다.

종교, 철학, 정치 등에서 특정한 진리로 간주되어 토론이나 비판 없어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나 원칙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어, 종교에서 신의 존재를 절대적 진리로 믿는 것이 도그마의 한 예이다.

일상에서의 도그마란, 저마다 모두가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무조건적인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믿고, 그것이 곧 정답이라고 밀어붙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한 번 쉽게 말해, 도그마는 본인의 신념을 절대적으로 남들에게도 강요하게 되는 점이 문제로 발생되는 점이 있다.

무조건적으로 믿는 신념.

저마다의 마음속에 가치관, 신념, 모토 등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이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누군가에게 본인만의 절대적인 신념을 정답처럼 강요한다는 것에 문제가 생기고, 갈등을 악화시키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엄마와 나의 일상에서는 각자의 도그마로 인해 심히 많은 갈등을 겪었다.

처음 이 곳에 엄마 집으로 합가해 내려와, 짐정리들을 하고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네 마리의 고양이들과 엄마는 갑작스러운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미 고양이들과 지낼 것이라는 사실을 엄마도 알고 있었지만, 고양이들의 습성이나 동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 없는 엄마로서는 사실, 본인만의 꾸준한 환경패턴이 자리잡혀 있던지라, 그저 난봉꾼들로 보여질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밤, 엄마가 자고 있는데, 머리맡 위 선반에 있던 고양이(대장 놈)가 냅다 엄마의 가슴팍 위로 뛰어 내려간 것이다.

엄마는 너무도 심장멎을 것처럼 놀랐고, 아파했다.

당연한 사실이다. 나도 서울살이를 할 때 이녀석들에게 오밤중에 많이 같은 방식으로 당해봤으니 말이다.

엄마만의 환경이 굳어져 있었는데, 이 녀석들이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활개를 치니, 엄마는 눈뜨고 볼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어떤놈은 식탁위에, 어떤놈은 싱크대 위에, 어떤놈은 엄마의 침대와 방안을 모두 뒤적거리며 활개를 쳐대니, 털로 인해 엄마가 굉장한 영역 침범을 당했던 터라,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고양이들 공간과 우리의 공간을 분리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이 잘 때가 되면, 내 품으로 와서 폭- 앵겨 자는 것이 일상이었어서, 허전했지만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승낙했다.

나의 비염과 기관지가 좋지 않아, 아이들의 털이 휘날리는데에서 날 숨쉬게 내버려두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 다음날 부터 엄마는 다이소에서 마구 이것저것 재료들을 사오기 시작했고, 파티션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파티션으로 거실과 주방 공간을 따로 구분지어, 거실 공간 반쪽은 고양이들의 공간으로, 나머지 우리의 방과 주방 공간을 분리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가장 몸집이 작고 가벼운 막둥이(이름 그 자체가 막둥이이다.)가 있는데, 요 녀석이 지도 지가 가벼운 걸 아는지, 날쌘 몸짓으로 아무렇지 않게 파티션을 뛰어 넘어들어온 것이다.

엄마는 분리만 시키면 평온해질 줄 알았으나, 날다람쥐처럼 공든 탑을 무너뜨리듯이 비웃기라도 하는냥 쉽게 뛰어넘어왔다.


엄마는 공들여 힘겹게 파티션을 설치한 것이 허무해졌고, 열이 받았다.

오기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더 높이 파티션 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반투명 판넬 판들을 위에 덧붙여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모든 수정을 마치고, 이제는 문제 없겠지라고 하던 찰나, 역시…. 또 쉽게 넘어온 막둥이 녀석 덕에 오기가 제대로 올라 씩씩 거리며 한바탕 파티션과 씨름하기 시작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는 나는 그저 할 말이 없었다. 어느 편도 들지 못하는 샌드위치가 된 심정이랄까.

또다시 덧대고 덧대고, 기둥 봉까지 사와서 모든 것을 설치해, 절대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사투를 벌인 것만 5번은 넘는 듯 하다.

끝없이 쉽게 넘어오던 녀석은 미련이 남는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시도했으나, 결국은 엄마의 승리로 일단락이 되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고양이들에 대한 감정이 그닥 좋지 못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망가뜨리려는 녀석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던 터, 이 녀석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이 총 4개에 플러스로 한개. 총 5개의 화장실을 두었어도, 뭐가 그리 불만인지 다른 곳에 계속해서 실례를 했다.

엄마와 나의 하루 패턴은 달랐다.

엄마는 새벽4~5시경이면 늘 새벽기도를 위해 1층(교회이다.)으로 내려가시는데, 그 시간에 깨는 엄마는 아이들이 여기저기 불만표시를 해 놓으며 싸놓은 오줌들을 치워야 했고, 고양이 특성상 오줌냄새가 지독하기에 엄마는 슬슬 또 열이받기 시작했다.

나도 이런저런 시도를 하려했고, 이 녀석들이 대체 뭐가 문제와 불만이 있는 것인지 파악하는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엄마에게 고양이들 뒷처리 등을 맡기려 한 적이 없는데 엄마는 그 상황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혼자 치우게 되는 모양새가 되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신경질과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한 것이다.

초반부터 엄마는 고양이 네마리들과 함께 엄마 집으로 내려오는 것을 허락했고, 공간 분리를 해도 아무 말도 안하고 조용히 엄마 심기를 건들지 않고 지내려 하는데, 엄마는 자꾸 힘들다며 고양이들을 어디에다 자꾸 보내자라는 말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내 입장에서는 절대 내 생명을 살려준 이 녀석들을 끝까지 나 또한 책임져주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고, 엄마의 허락으로 데리고 왔는데, 엄마의 말이 바뀐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의 입장을 알면서도, 나는 당연히 엄마의 패턴과는 다른 상황이기에 어찌 해결할 방도가 없는데, 엄마는 자꾸만 나를 앞에두고 짜증과 불만만 계속 늘어놓으니 정신이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결국은 참다 못해, 폭발해서, 엄마와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엄마가 허락 했잖아. 그래서 내가 여기로 내려온거잖아. 엄마가 여기 내려오도록 그렇게 말해서 내려온거잖아. 안그랬음 나도 안내려왔어! 그 정도 각오하고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지. 왜 이제와서 고양이를 보내라느니 밖에 풀어버리라느니, 그런 잔인하고 학대스러운말을 자꾸 하는거야 대체 왜? 그리고 내가 언제 엄마더러 치우라고 시키기를 했어 뭐를 했어. 왜 자꾸 답도 없는 말로 날 붙들고 불평하고 화풀이를 하는거야!”

제대로 폭발한 것이다.

그러자, 엄마의 대답은

“네 고양이니까 네 잘못이지!!!”

난 순간 말을 잃었다.

내 고양이들인 건 맞는데, 나는 그저 가만히 얌전히 조용히 있는데, 고양이를 데려온 내가 잘못이니까 나한테 화풀이를 해도 된다는 엄마의 답이 솔직히 미친것같았다.

어떻게 어떤 신념으로, 가치관으로 살아가면 그런 말들이 아무렇게나 쏟아질까. 하는 생각에 마음속은 어두운 먹구름이 가득 끼인 것 마냥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번의 대화시도도 해보고, 다른 해결책을 구상해보자고 해도, 그때의 엄마는 엄마만의 신념이 강해 화법이 항상 이런 방식이었다.

“몰라! 나한테 피해를 주잖아! 그러니까 네 잘못이지!”

엄마의 도그마는 ‘피해자’였다.

나의 도그마는 ‘엄마니까 이젠 엄마답게 날 품어줘야지.’였다.

이러니 서로 갈등이 악화될 수 밖에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심어준 엄마였기에, 지금에라도 변화가 있을 거라 기대하고 이제는 변화해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도그마가 자리잡혀 있었다.

엄마는 본인을 그렇게 만든 것이 이녀석들을 데려와 피해만 주는 내 탓이 도그마였다.

절대적인 신념.

그리고 서로에게 하는 강요.

서로 지칠대로 지쳐갔다.

끝없이 반복되는 서로의 신념을 강요를 해대니 늘 싸움만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함께 깨달았다.

우리의 생각이, 말이, 감정이 남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깨닫기까지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5년동안 우리는 미치도록 미워하며 원망하며 싸우면서 뒤늦게서야 서로의 입장을 들어줘보고 이해해보기로 한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절머리 날 정도로 해댔던 싸움이 없었다면, 끝없이 반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시기가 흐르고 흘러, 결국은 우리가 화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서로를 더 배려하기 위해 서로가 변화하기로 마음먹기까지.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지만, 그 고된 시간들과 경험이 쌓이지 않았다면 우린 분명 여전히 변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깨닫고, 변화하기 시작한 생각의 유래는 이랬다.

우리의 강한 자기만의 신념을 본인 스스로가 미련과 집착으로 꼭 쥐고 있었더니 서로에게 해를 줄 뿐 만아니라, 스스로도 더욱 괴로운 지옥으로 빠져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연습은 결국 자기자신의 욕심과 미련,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고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가 내려놓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랬더니 마음이 조금은 서로가 편해졌고, 서로의 마음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고되고 불행이라 생각했던 시간들이, 결국에는 빛을 발하는 날이 꼭 온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불행과 고통을 무서워하지 않고 힘겨워하지 않기로 한 발짝 더 내딛어 보기로 다짐했다.

결국, 우리에게 그 불행과 고통들은 밑거름이 되어 우리를 더 나아가게 해줄 거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도그마를 내려놓는 연습은 꼭 필요하다.

절대적인 신념, 자신의 가치관만이 정답이고 무조건인 것은 없다.

스스로도 옥죄이고 괴롭히는 잘못된 방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

우리의 아주 작은 욕심과 기대도 모두 내려놓는 연습을 우린 여전히 진행중에 있다.

더 나은 감사가 넘치는 날들이 오기를 바라며, 우리가 먼저 바뀌는 노력을 하는 중이다.



<문제의 막둥이 사건>


머리굴려 넘어오려다 꼈다.

삐뽀삐뽀-적발!! 잡았다 요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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