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다.
그렇다. 나는 전직 아이돌이다.
일곱 살이란 나이, ‘소녀시대’의 무대를 보며 아이돌이라는 꿈을 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K-POP 스타’를 비롯한 수많은 오디션장을 전전했고,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드디어 첫 기획사에서 ‘연습생’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그리고 4년 뒤, 스무 살 마침내 데뷔하게 되었다.
01년생은 나이 계산이 참 쉽다. 2026년인 올해, 나는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그럼 2020년을 떠올리면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코로나19의 발병. 우리 팀은 바로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데뷔했다.
당시 회사 분들조차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지금 데뷔하는 게 맞는 걸까?” 수많은 고민과 걱정 속에 첫발을 내디딘 우리와 동시에 데뷔한 팀은, 공교롭게도 대형 기획사에서 야심 차게 선보인 ‘에스파’라는 그룹이었다. 그럼에도 마냥 기뻤다. 꿈을 이루는 기분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우리의 음악이 이제는 세상 어디에서 누구나 들을 수 있고, 응원해 주던 부모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교차하며 벅참, 설렘, 환희. 그 어떤 단어로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데뷔’라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 보고 달려왔기에,
꿈을 이뤘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현실에는 ‘코로나’라는 높은 벽이 있었다. 제약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얼굴을 알리는 것이 직업인데 마스크는 필수였고, 방송국마다 키트 검사가 필수였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코를 찌르는 검사 키트와 씨름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무대에만 설 수 있다면 말이다.
진짜 시련은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 역시 무대와 행사가 사라지는 고통을 겪었다. 무엇보다 관객 없는 무대에 오를 때면 기쁨도 설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당신도 숏츠나 릴스에서 봤을지도 모른다. 카메라 감독님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무빙을. 지금의 숏폼 플랫폼에 최적화된 화려한 카메라 워킹이 정착된 건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시기였다. 관객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더 화려한 연출과 눈에 띄는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본이 많은 대형 기획사들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정교한 연출과 무빙을 준비했다. 그만큼 대형 기획사 그룹들의 리허설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몇 번 제대로 서보지도 못한 채 리허설을 마치고 본 무대에 올라야 하는 일이 허다했다.
우리 회사가 작은 규모는 아니었지만, 거대 자본을 가진 대형 기획사는 아니었다. 솔직히 부러웠고, 때로는 질투도 났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 또한 우리의 운명인 것을' 그때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어린 나이에 전직 아이돌로서 벌써 두 가지의 소중한 감정을 배웠다. 감히 말하건대, 일반적인 스무 살은 쉽게 경험하기 힘든 감정들이라 생각한다.
1. 성취: 간절한 노력 끝에 꿈을 이뤄냈을 때의 환희.
2. 한계: 본질과 배경의 차이처럼,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깨달음.
당신은 ‘전직 아이돌’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에 이끌려 이곳에 들어왔을 거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는 화려한 무대 위의 조명보다는 그 이면의 이야기들이다. 평범하지 않은 과거에서 길어 올린 감정들 오히려 ‘평범한 삶’을 갈구하게 된 이유 그 과정에서 심리학과 상담을 공부하게 된 계기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내 글을 통해 여러분께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특별하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의 삶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이 진심이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면, 나는 꽤 행복하고 뿌듯할 것 같다.
나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내 소중한 삶을 기록하기 위해.
그리고 당신에게 따뜻한 위로를 그리고 행복이란 선물을 주기 위해
이제 글쓰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