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중이다

비교와 질투는 나쁜 감정인가

by 나린세스

당신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중이다.


비교와 질투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우리는 보통 부정적인 인식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비교와 질투는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열망, 혹은 더 성장하고자 하는 뜨거운 갈망에서 피어나는 감정이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너무 잘 나가거나, 나보다 시험 점수를 잘 받거나, 혹은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마음에 손을 얹고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질투한 적이 없는가?


살면서 자신의 삶의 방향과 목표를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화려한 인스타그램 속 호캉스와 명품들을 보며 현실 속의 나와 비교해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나보다 상황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비겁한 안도감을 느끼며 살아가기도 한다.


이를 설명하는 '사회비교 이론'이 있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54년에 발표한 이론으로, 인간은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이 없을 때 타인이라는 '척도'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질투는 비교에서 피어난다. 비교를 하지 않는다면 질투할 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경험에 빗대어, 과연 이 비교와 질투가 정말 나쁜 감정인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글에서 비교와 질투를 영양제 (supplement)로 표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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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supplement)



나는 어릴 적부터 아이돌을 꿈꾸며 보컬과 댄스학원을 다니고 수많은 오디션장을 전전했다. 학생들이 공부하며 서로의 시험 점수를 견제하듯, 나 또한 더 춤을 잘 추기 위해, 노래를 더 잘 부르기 위해,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연습실에 더 오래 남는 사람이 뭔가 더 열심히 하는 것 같고, 그런 모습을 원장 선생님께 보여야 오디션 기회를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곳은 강남의 한 학원이었는데, 의외로 학생들의 의지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마음만 있을 뿐, 독하게 연습하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내 영향을 받은 친구 한두 명이 남아서 연습을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느샌가 학원에 '새벽 연습'이라는 문화가 생겼고, 새벽반 선생님들까지 추가되었다.


이것이 바로 '나비효과'다. 나라는 한 마리의 나비가 일으킨 날갯짓, 즉 나와 자신의 연습량을 비교하며 위기감을 느낀 친구들이 하나둘 연습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또한 같이 연습할 동료들이 생겨서 좋았지만, 한편으론 나보다 더 늦게까지 남는 친구들을 보며 더 지독하게 노력했다. 결국 학원 전체의 오디션 합격률이 올라가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회사에 들어가니 차원이 달랐다. 모두에게 똑같은 연습 시간이 주어졌고, 누구나 피와 살을 갈아 넣는 수준으로 연습했다. 이때부터는 연습량이 아닌 다른 차원의 비교가 시작된다. 나보다 더 마르고, 예쁘고, 눈에 띄는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살을 빼고 표정 연습을 하며 죽어라 노력했다. 그렇게 다 같이 성장하는 구조로 발현되었다.


데뷔조로 확정되어 한 팀이 된 멤버들 사이에서도 비교는 멈추지 않았다. 인기 있는 멤버와 그렇지 못한 멤버가 팬들의 관심도에 따라 나뉘고, 파트 분량과 센터 위치에서 차이가 났다. 실력뿐 아니라 외모적인 부분에서도 끊임없이 비교가 일어났다. 그러면 또다시 나 자신과 멤버를 비교하며 더 예뻐지기 위해 시술을 받거나, 멤버들이 숙소로 돌아갈 때 혼자 연습실에 남아 연습을 더 했다.


나는 10대 내내 이 치열한 비교 끝에 참 많이 성장했다. 비교를 통해 '건강한 질투'를 느끼며 한계를 넘어본 것 같다. 물론 늘 긍정적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자존감이 곤두박질칠 때도 많았고, 너무 힘들어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비교는 질투라는 감정이 터지기 전의 '신호'였으며, 나를 데뷔까지 이끌어준 '아픈 영양제'와 같았다.


이 영양제 (supplement)를 어떻게 삼키느냐에 따라 부작용을 겪을 수도, 혹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건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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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supplement)



비교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질투가 피어난다. 진화심리학에서는 : 질투를 채집 시절부터 소중한 자원이나 관계를 뺏기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방어 기제로 설명한다. 그만큼 질투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즉 나의 목표나 인간관계가 위협받을 때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방어해야 할 가치가 클수록 질투의 크기도 커진다. 질투는 비교보다 훨씬 강한 영양제이며, 그만큼 강한 부작용을 동반한다.


나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늘 경쟁적인 환경에 놓여 있었다. 일반적인 학교생활에서는 시험 점수로 경쟁하거나 좋아하는 친구 문제로 잠시 질투를 느낄 뿐, 나의 생존이나 꿈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세계는 달랐다. 내 옆의 친구를 제쳐야 내가 살아남는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실수를 해야 내 노래가 돋보일 수 있다. 혹은 그 친구의 선곡이 아쉬워야 내가 데뷔조가 될 수 있다. 너무 좋아하는 친구인데도, 살아남기 위해 그런 마음을 품으며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심지어 월말 평가에서 누군가 퇴출당하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비정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이런 감정을 느끼다 보니 스스로를 자책하며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구나' 생각한 적도 많았다. 누군가 새로 들어오면 내 자리를 위협한다고 느껴져 경계하곤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견제를 나의 성장에 쏟아부었다. 한두 명을 제쳐 나가며 버텼다. 질투라는 감정이 너무 컸기에 오히려 버틸 수 있었다. 데뷔해야 한다는 간절함, 생존해야 한다는 마음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한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큰 힘을 주는 영양제 (supplement)는 어쩌면 질투다.


물론 어두운 사례도 있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나의 한 멤버는 내 악플을 남겼다. 정확히 말하면 멤버의 어머니가 그러셨다. 해체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엄마가 화가 나 경찰서에 가야 할 정도로 수많은 악플을 남기셨다는 걸 알고 적지 않게 놀랐다. 그 어머니는 나를 질투했던 걸까. 아니면 그 친구가 나를 질투해 어머니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던 걸까. 나에게는 여전히 큰 배신이며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질투의 가장 큰 부작용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파괴하는 것. 꼭 연예계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를 질투해 험담을 하거나 왕따를 시키는 행위들 말이다. 심리학자 닐스 반 드 벤(Niels van de Ven)은 질투를 두 가지로 구분했는데, 그중 위험한 것이 '악성 질투'라고 말했다. 타인의 성공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가 아니라 "저 사람의 것을 망가뜨리고 싶다"는 파괴적 욕구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질투라는 감정을 내가 무엇 때문에 느끼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 에너지를 근본적인 성장에 쓰고, 더 건강한 비교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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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찰하기.



그렇다면 나는 위와 같은 상황 속에서 마주한 이들을 미워했을까? 전혀 아니다. 학원에서 함께 춤추고 노래하던 친구들, 회사에서 365일 24시간을 가족보다 더 오래 함께한 멤버들. 우리는 누구보다 돈독했고 수많은 땀과 이야기를 공유한 사이였다. 전혀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끊임없이 그들과 비교했다.


우리는 각자 마음의 소리를 듣고 산다. 어렸을 적엔 그 소리 때문에 스스로를 나쁜 아이라고 몰아세웠지만, 나는 결국 그 감정을 행동으로서 '성장'이라는 결과로 발현시켰다.


나는 늘 나의 행동과 말을 돌아본다. 사람이기에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실수할 때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그랬는지' 늘 재진찰해야 한다. 나에게 이 영양제가 올바르게 투여되었는지, 빈속에 먹은 것은 아닌지, 혹은 너무 과하게 먹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이 과정을 겪는 사람만이 더 지혜롭고 현명해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현명한 사람이란, 스스로 돌아보며 진찰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메타인지'가 가능한 사람이다. 누구나 가능하다. 다만 나 스스로에게는 솔직해져야 한다.


비교와 질투는 결코 나쁜 감정이 아니다. 다만 이를 부작용 없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만이 더 효과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 당신도 오늘, 그리고 내일 늘 누군가와 비교하고 질투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이를 잘 이용해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꼭 위로하고 싶다. 누군가의 질투와 비교 때문에 아픈 일을 겪었다면, 역설적으로 생각하자.


과거의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



"그것은 당신이 질투날만큼

멋진 사람이었다는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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