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보존의 법칙
독자에게 ‘노력’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기 전,
한 가지 질문을 먼저 하고 싶다.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
당신은 무엇을 먼저 듣고 싶은가?
나는 예전에는 당연히 좋은 이야기를 먼저 듣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것이 기분 좋고, 마음도 편하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좋은 이야기는 환대하지만, 나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피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행복 보존의 법칙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행복 보존의 법칙이란 이런 개념이다.
모든 행복(+) 뒤에는 불행(-)이 오고, 모든 불행(-) 뒤에는 다시 행복(+)이 와 결국 제로를 만든다는 것.
행복한 이야기를 먼저 듣든, 불행한 이야기를 먼저 듣든 결국 우리의 상태는 다시 중간점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행복한 일이 생겨도 그 행복은 영원하지 않고, 힘든 일이 생겨도 그 불행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이야기를 먼저 듣든 내 상태는 다시 제로, 즉 평온한 상태로 돌아온다는 것."
이 생각을 인지하고 나서부터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덜 흔들리며 살아가게 되었다. 큰 좋은 일이 생겨도 “이 순간이 지나가겠지”라고 생각했고, 큰 나쁜 일이 생겨도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좋은 일에도 너무 들뜨지 않고, 나쁜 일에도 너무 오래 머물지 않으려 한다. 그저 그때그때 지나가고 다시 찾아올 나의 평온한 상태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편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도 그랬다. 너무 좋은 일이 생기면 이 행복이 떠나갈까 봐 오히려 불안했고, 너무 나쁜 일이 생기면 언제 이 시간이 끝날지 몰라 아파했다. 그렇게 살아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없는 순간이 사실 가장 행복한 시간 아닐까. 평온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특별한 사건도 없는 그 순간. 나는 그 상태를 나에게 가장 안정적인 행복의 상태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집에 가는 길, 바깥 창문으로 보이는 노을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 친구들과 티타임을 하다 문든 주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는 순간, 매일 나를 반겨주는 강아지지만 오늘따라 그 반가움이 더 애처롭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되던 나의 평온한 일상이 사실은 행복한 상태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좋은 일이 생겨야 행복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쁜 일이 생기면 나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정의를 내려 버리면 행복은 점점 얻기 어려운 것이 되고, 나쁜 일에 대한 두려움만 커지게 된다. 그 두려움은 때로는 우리의 성장도 방해하고, 현재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까지도 막아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행복 보존의 법칙을 알게 되었으니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또한 결국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다시 우리의 평온한 상태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영원한 행복도 없고 영원한 불행도 없다."
그러니 언젠가 찾아오게 될 나쁜 일들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해결해 나가면 된다. 인생에는 늘 다음 길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게 될 줄 알았을까.
아마 대부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은 늘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언제나 변수라는 것이 존재한다. 당연한 것은 없고, 당연하지 않은 것도 없더라
인생이라는 넓은 책 속에서 우리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결국 나만의 결말을 만들어 간다. 책은 내용도 다르고, 어법도 다르고, 주제도 다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다. 정해진 삶도 없고, 정해진 결말도 없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난 뒤부터는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무수히 많은 변수 속에서 또 다른 길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 생각이 들자 오히려 인생이 조금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1-2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태어난 이 시대에는 모두가 원하는 직업을 가져야만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무수히 많은 직업과 삶의 방식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과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처음에는 분명 하나의 주제를 정해 놓고 시작하지만, 막상 쓰다 보면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갈 때가 많다. 그래서 여러 버너 수정하게 된다. 수정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글이 나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예 주제 자체를 바꿔 버리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글도 이렇게 여러 번 수정되는데, 하물며 인생은 얼마나 더 많은 수정과 변화가 필요할까.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변수는 꼭 나쁜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큰 변수가 있었다. 바로 아이돌 그룹의 해체였다. 나는 코로나 시기에 데뷔했다. 당시 많은 회사들이 막대한 투자금을 들여 아이돌 그룹을 준비하고 있었고, 우리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데뷔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활동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고, 회사 입장에서는 더 큰 투자를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조금씩 상황이 나아질 즈음에는 이미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 있었고, 우리 그룹은 결국 해체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해체를 경험한 그룹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코로나 시기 데뷔했던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투자가 이어지지 못해 활동이 중단되거나, 휴식기에 들어가거나, 혹은 해체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에스파나 스테이씨처럼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그룹들도 있었지만, 그 외 많은 팀들이 같은 시기를 버티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라는 상황 자체가 하나의 변수였구나. 그리고 그 변수는 나에게 해체라는 또 다른 변수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떤 페이지를 써 내려가게 될까.”
나는 그 변수를 또 다른 삶의 방향으로 사용해 보고 싶었다. 어쩌면 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있다.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주제를 바꾸기도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삶이 그때보다 더 행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1-1편 참고)
이 과정을 겪고 나니 앞으로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그것 역시 인생의 순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변수는 때때로 우리 삶에 나타나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어쩌면 더 좋은 길로 가기 위해 등장하는 미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있다. 모든 일이 지나가고 나서 문득 “아, 내가 그때 그 일을 겪으려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인생은 늘 우리를 완전히 바닥으로 끌어내리기보다는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인생의 순리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변수와 변화가 더 이상 두렵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의 책에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쓰이게 될까.
그 페이지가 어떤 내용이든 분명 당신만의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영어 happiness는 happen이라는 단어에서 왔다고 한다. 즉 행복은 ‘일어나는 것’, 다시 말해 좋은 운이 찾아온 상태를 의미한다.
이 말은 곧 행복이 반드시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 우연히 찾아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6년을 살아오며 내가 느낀 것은 나는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어렸을 때 학급에서 뽑기를 해도 선발된 적이 거의 없었고, 어떤 이벤트에 당첨된 기억도 많지 않았다. 심지어 사소한 일들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내가 주문한 배달 음식은 종종 지연되거나 문제가 생겼고,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가도 꼭 놓치는 일이 많았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스스로를 운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반대로 내 여동생은 유독 운이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로또를 사면 5000원 이상은 종종 당첨되고, 웨이팅이 긴 맛집도 동생과 함께 가면 그날만큼은 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린 나에게 동생은 어딘가 동경의 대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운이 안 좋은 사람이구나.” “동생은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운이 없다면 노력이라도 많이 하자. 아이돌을 준비하면서도 나는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했다. 결국 디스크와 무릎 염증까지 생겼지만 그때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더 노력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무릎과 허리가 아픈데도 아픈 티를 내지 않고 계속 연습했다.
결국 회사에 들어가 연습생이 되었고 노력 끝에 데뷔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이후 영원히 행복했을까. 아니었다. 데뷔하는 순간은 분명 행복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시간들을 떠올려 보면 행복했던 순간보다 힘들거나 불안했던 순간들이 더 많이 기억난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노력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그 이후로 한동안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운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죽을 만큼 노력했다. 그 노력 끝에 목표를 이루었는데도 행복해질 수 없다면 도대체 나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복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로또에 당첨된다거나, 주식 최저점에서 사 최고점에 판다거나, 강남에 빌딩을 세운다거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된다거나. 이런 일들은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있지만 행복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너무 거대한 일들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의 기준을 조금 낮추어 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 5분 일찍 나와 늘 놓치던 버스를 타는 작은 성취감. 블로그를 시작하며 내가 좋아하는 맛집들을 기록하는 즐거움. 가족들과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추억을 만드는 시간. 겨울 냄새가 나는 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산책하는 순간. 이런 작은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는 점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꽤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내 삶에는 좋은 일들이 조금씩 더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운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방식이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기 시작하고 그전에는 의미 없이 지나쳤던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내 삶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행복을 이렇게 정의한다. 행복은 거대한 성취가 아니라 소소한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느껴본 사람만이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그 행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는 결국 (+)와 (-) 사이 어딘가로 돌아온다. 그 제로의 상태, 평온한 그 순간 속에서 우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삶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