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메아리

마음의 구조

by 나린세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구조


사람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사랑받고 싶은 '내면의 아이'를 품고 산다. 예전에는 그저 막연히 받고 싶다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그건 마음 놓고 마음껏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사랑은 주고받음의 역동이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사랑'의 뜻을 찾아보았다. 누군가를 아끼고 위하는 정성스러운 마음, 상대방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을 베푸는 것. 결국 사랑은 내가 주는 것에 아까움을 느끼지 않고, 손해 봐도 괜찮을 만큼 정성을 다하는 베풂의 마음인가 보다.


내가 연인에게 이만큼의 마음을 주었는데 상대의 반응이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면, 주고 싶은 마음도 떨어지거나 실망 섞인 서운함이 몰려오곤 한다. 혹은 이 사람은 나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드는 건 지극히 당연한 마음의 구조다. 이건 계산적인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사랑하고 싶고, 또 그만큼 사랑받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 '마음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우리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내면의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사실 나 역시 이 내면의 아이를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이며, 사랑보다 일이 훨씬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소중한 한 사람을 만나며 나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나 또한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내면의 아이를 기꺼이 인정한 지금, 나는 전보다 훨씬 더 충만하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 외로움을 전혀 타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각자가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외로움을 느끼고, 또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방향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큰 신호, 외로움



요즘 ‘테토녀/테토남’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라. 이는 테스토스테론, 즉 남성호르몬이 강한 성향의 사람을 뜻한다. 나는 외면만 보아서는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강한 사람이지만, 어릴 때부터 겪어온 수많은 경쟁 상황과 K-장녀라는 위치 때문인지 내면은 꽤나 ‘테토녀’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연애를 어렵게 느끼지도 않았고, 그보다는 나의 목표나 성취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살아왔다.


아이돌 활동이 끝난 직후, 나는 곧바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수년간 수많은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해오다 보니 나만의 독립된 공간과 시간이 간절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나의 당당했던 자취 생활은 1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다시 본가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도 분명 달콤했지만, 나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며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본가로 돌아오며 처음으로 인정했다. 나 또한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반론을 던질지도 모른다. “나는 자취를 아주 오래 했는데도 전혀 외롭지 않은데요?” 하지만 내가 앞서 이야기했듯, 외로움이란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씨앗을 품고 있다.


인류는 채집 시절부터 공동체 생활을 해왔고, 가족을 꾸려 사랑을 나누며 생존해 왔다. 그 유전적인 DNA는 여전히 우리 몸속에 남아 ‘함께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고 싶은 열망’으로 간직되어 있다. 그러니 이와 반대되는 상황, 즉 혼자서만 견뎌야 하는 일들이 지속되거나 누군가와 마음을 교류할 기회가 없다면 우리는 누구나 결국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외로움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당신이 이제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아주 선명한 신호다. 우리 마음이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내어, 지금 느끼는 이 외로움을 극복하고 사랑의 세계로 나아가보라고 다독이는 감정의 언어인 셈이다.


그러니 외롭다고 해서 스스로를 나약하게 여기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를 들여다보고, 상황을 변화시켜 보는 용기를 내보길 권한다. 나의 경우 1년의 자취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더 많이 표현하게 되었고, 내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챙겨야겠다는 감사함이 매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 경험은 내 인생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사랑의 큰 신호인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아, 내가 지금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싶구나. 혹은 사랑받고 싶구나.’ 그 신호를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거나, 먼저 마음의 손을 내밀어 보자. 혹은 나처럼 주변 환경을 과감히 바꿔보는 것도 좋다.


외로움은 그렇게 움직일 때 비로소 이겨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주고받음’이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만 해서는 절대 ‘받음’이 생기지 않는다. 기억하자. 사랑에는 수많은 요소가 들어있다. 인간관계, 직장 생활,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찰나는 사랑의 변주이며, 그 본질은 결국 기꺼이 주고받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을 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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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살아간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은 결국 사랑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 나는 가족의 품 안에서 사랑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세계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모두가 나를 경계하는 차가운 시선, 이유 없는 미움, 가식적이라며 비난하던 어른들. 어린 나이에 마주한 세상은 내가 알던 곳과 정반대였다. 나를 지켜줄 어른도, 공감해 줄 친구도 곁에 없던 그 시절, 나는 생애 가장 커다란 외로움을 느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아이돌 해체 후 가족과 친구들에게 유독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다. 나는 더 잘하려고 노력했고, 더 정성껏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만약 누군가 이유 없이 당신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온 마음 다해 응원하고 표현해라. 그로 인한 행복과 안정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사랑의 메아리



나는 어디를 가든 무언가를 나눠주는 일을 참 좋아한다. 누군가를 살뜰히 챙겨주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내 삶의 커다란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묻곤 했다. “그렇게 주다가, 그만큼 받지 못하면 서운하지 않으세요?”


예전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제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건데요.” 하지만 솔직하게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았을 때, 어느 순간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모순적인 사람인가? 순수하게 주는 게 아니라, 사실은 무언가 받고 싶어서 주는 걸까?’ 이런 질문들로 스스로를 괴롭혔던 적이 많았다. 아마 나와 같은 고민을 해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답은 아니지만, 내가 치열하게 고민해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세상에는 원래 ‘주고받음’이라는 사랑의 공식이 존재한다는 것.


내가 준 것을 똑같이 되받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사랑으로 건넨 마음에 대한 보답, 즉 사랑의 메아리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A를 줬다고 해서 꼭 A나 A+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고맙다는 진심 어린 표현, 혹은 상대방의 환한 미소 같은 것들을 바라는 것뿐이다. 이 역시 건강한 ‘주고받음’의 일부다.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저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당연한 내면의 아이를 가진 한 사람일 뿐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직장 동료 사이나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 예의상, 혹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를 주고받는 경우는 여기서 제외하고 싶다. 내가 말하는 것은 정말 순수하게 나눠주고 싶어 건넨 진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상황을 겪는다. 누가 나를 챙겨주었는지,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일일이 떠올리며 계산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계산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이 느끼게 된다면 그 차가운 기운 역시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계산적인 마음을 경계하기보다는, 내가 나눠주고 배려하는 모든 것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고 믿어보자. 그렇게 믿고 마음 편히 여유롭게 살아가 보는 것이다.


혹시 당신의 순수한 배려와 나눔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괜찮다. 그냥 당신의 길을 걸어가라. 당신이 베푼 그 선한 의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을 돕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꼭 사람 사이가 아니더라도, 나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구조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비로소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다. 타인을 향한 배려와 사랑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가장 큰 사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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