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엄마처럼.
모든 엄마들은 모두 내 엄마 같을까? 나는 엄마가 하나밖에 없어 잘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다. 아름다운 색을 써서 포스터를 만들거나 수채화로 다양한 옷을 디자인하거나 지점토로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만들거나. 예쁘고 미감이 좋은 것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화장품이나 엄마의 옷에 관심이 생겼다.
나는 엄마가 동생과 함께 외출한 날 엄마 몰래 얼굴에 이것저것 그려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날은 운이 없게도 엄마가 집에 일찍 도착했다. 나는 내가 낙서해 놓은 얼굴을 보이기 싫어서 동생의 방으로 도망친다. 엄마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내 얼굴을 본 건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다그치기 시작한다.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얼굴을 찡그린다. 나는 다시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리라 속으로 다짐한다.
"얼굴에 이게 뭐야!!! 누가 화장하라고 했어, 어?"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오, 주여... 진짜 별꼴이네. 당장 가서 지워."
"네, 엄마."
아이가 부모님이 하는 행동을 보고 따라 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기한 건, 만 12살 나도 그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건 부당하다고.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엄마는 그냥 웃어넘길 순 없었을까?
***
나는 친구네 집에서 자본 기억이 거의 없다. 올해 홍이라는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 것도 거의 빌다시피 해서 겨우 얻어낸 허락이었다. 엄마는 모든 면에서 항상 나를 통제하려 한다. 내가 그의 손아귀 안에 있어야만 엄마의 마음이 편안한 듯하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하고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절대 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단 한 번도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홍이네 집에서 잤던 날, 홍이네 어머니를 처음으로 뵈었다. 그분은 정말 자상하고 따뜻했다. 순간 이 아줌마가 우리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니까 홍이네는 교회도 안 가고 주말에는 가족끼리 놀러 다니는 것 같던데. 아줌마는 말투도 너무나 상냥했다. 홍이는 성격이 굉장히 좋은 친구인데,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엄마처럼 되면 어떡하지?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본다. '나는 엄마와 닮지 않았다'라고 머릿속으로 되뇐다. 마치 주문인 마냥.
"아우 내 배 좀봐. 살이 언제 이렇게 쪘지?"
"..."
엄마는 항상 자신의 모습에 불만이 가득하다. 자신의 다리가 얼마나 굵은 지, 팔이 얼마나 두꺼운 지,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을 바라본다. '나도 배가 나온 것 같은데 그러면 나도 뚱뚱한 건가? 내가 봤을 때 엄마는 예쁜데 왜 저런 말을 할까? 나는 엄마보다는 못생겼는데 그럼 나는 진짜 못생긴 건가...'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나에게 예쁘고 귀엽다고 칭찬을 해준다. 그런데 정작 내가 우리 엄마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평생 들어본 적이 있어야지. 오늘도 나는 거울을 보며 내가 정말 예쁜 건지 못생긴 건지 나 자신을 뜯어가며 평가한다. 오늘도 나는 엄마를 닮아간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싸이월드와 네이트판을 켠다. 나의 미니홈피에는 그 누구도 방문하지 않는다. 네이트판에는 예뻐지는 법, 훈녀생정, 흔녀 훈녀 만들기 등 최신 유행 콘텐츠들이 가득이다.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게시물을 찬찬히 훑어보니 미용제품에 대한 정보들이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다. 필요할 것 같은 화장품들을 꼼꼼히 메모해 둔 뒤 인터넷으로 가격을 검색해 본다. 다시 한번 나의 미니홈피를 확인한다. 방문자 수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모니터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 괜히 나갔다 들어와 본다. 나보다 예쁜 친구들은 방문자 수가 100명이 넘는다.
"이게 다 내가 못생겨서 그래."
혼잣말을 읊조리며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 거울을 바라본다.
시내에 나가 미백크림,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틴트와 컨실러를 샀다. 잘 몰라서 우물쭈물했지만 그래도 이게 있으면 나도 예뻐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봤던 사진 속 그녀들처럼 새로 태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인터넷에 검색해 본 대로 미백크림을 적당량 펴 바르고 아이라이너를 눈모양에 맞게 그려본다. 크게 필요 있어 보이지 않는 컨실러를 얼굴 이곳저곳에 칠한다. 틴트를 입술 전체에 골고루 바르고 거울을 본다. 뭐가 예뻐진 건지 잘 모르겠다. 얼굴이 허옇게 떠 마치 달걀귀신같다. 아이라인은 그리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것 같다. 눈이 더 작아 보이는 듯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국 여자들이 아이돌에 집착하고 거식증에 걸리고 강남의 성형외과를 알아보고 서로서로를 1mm 단위로 뜯어보고 비교하고 괴로워하고. 보고 있으면 예뻐지는 사진,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다이어트 책들, 살이 쉽게 빠지지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약들이 성행하고. 나 역시 이 모두를 거쳤다. 하지만 아무리 살을 빼도 아무리 화장을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내 안의 나는 여전히 못난 나, 그대로였다. 자신에게 당당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지? 참 신기하네."
한참 동안 꾹 눌러 담았던 말을 조용히 뱉어본다. 하나님이 원망스럽다. 왜 나는 이렇게 생긴 걸까? 왜 하나님은 나만 미워하시지? 마태복음에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그럴 수가 없다. 하나님도 미워하는 나를 나는 사랑할 수가 없다. 이렇게 오늘도 나는 죄인이 된다.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한동안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