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 죽고 나 죽자.
"너 죽고 나 죽자!"
"..."
"차에서 내려. 너 죽고 나 죽자고!"
"..."
그리고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평소와 비슷한 회상을 하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테트리스를 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어쩌면 과거의 족쇄에 붙들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인 거라고. 나의 잘못은 없다고.
***
일요일 오전, 오늘도 나는 떼를 쓴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감기 기운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엄마, 나 오늘은 교회 쉴래."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나 머리 아파. 감기 걸린 것 같아."
"안돼. 아파도 교회 가서 아파. 교회 가면 다 낫는다."
"오늘은 가기 싫어."
"이나윤, 일어나! 빨리 나갈 준비 해. 교회 안 가면 지옥 간다 너?"
엄마의 정석적인 협박이 통했는지 나는 억지로 나갈 채비를 한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흰 스타킹을 신고 엄마에게 오랫동안 졸라서 산 연분홍 에나멜 구두를 신는다. 다 떨어져 가는 허름한 교회에 도착해서 1층에 있는 문구점을 확인해 본다. 오늘도 이것저것 눈이 가는 게 많다. 2층의 구질구질한 식당을 지나 3층 교회가 있는 건물로 들어선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는 곳은 식당 바로 옆의 작은 방이다. 너무 좁아서 침대와 책상을 두면 꽉 찰 것 같은 그런 방에서 친구들과 예배를 드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문 앞에 어지럽게 놓인 다른 신발들 옆 귀퉁이에 나의 소중한 새 신을 둔 채, 누구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가 밟으면 망가질 텐데...'
신발장도 없는 곳에서 그런 생각은 사치다. 성경 말씀을 듣고 이런저런 노래를 부르고 열심히 율동을 따라 한다. 어른들에게나 신을 섬기는 신성한 곳이지 어린아이들에게는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는 놀이터일 뿐이다. 어린이 예배가 끝나고 코 앞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내 신발을 찾는다. 부드럽고 반짝이던 앞코는 뭉그러지고 주름이 져 금방 낡아있다. 속상하지만 그 마음을 꾹 참고 흰쌀밥과 오징어채 무침, 땅콩 볶음, 누린내가 나는 불고기와 미역국을 배식받고는 에매랄드 빛이 도는 의자에 앉는다. 식탁은 이곳저곳 오래되고 더러워 보이는 곳이 많아 특별히 깨끗한 곳을 골라 앉는다. 의자의 쿠션이 다 헤어져서 앉아있기 불편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밥을 욱여넣는다. 밥을 남기면 지옥에 갈 테니까.
오늘은 친구들을 데려오면 달란트를 받는 특별한 주일이다. 보통 친구 한 명당 5000원짜리 달란트를 받을 수 있다. 몇 없는 친구들을 달래어서 허름한 교회에 데려간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게임을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식을 받아먹는다. 친구들은 문화상품권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대부분 다시는 교회에 오지 않는다.
"이번 주에 같이 교회 나가지 않을래?"
"어, 너 교회 다녀? 재밌어?
"응 재밌어."
물론 거짓말이다.
"이번 주에 약속 없으면 같이 가볼래?"
"음... 그래!"
가장 친한 친구인 경주에게 용기를 내어 교회에 같이 가자고 했다. 교회에는 내 또래 아이들이 잘 없다. 대부분 나보다 한참 어리거나 아니면 남자아이들 뿐이다. 교회는 지루하고 밥은 맛이 없다. 차라리 집에 가서 집밥을 먹고 싶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간 엄마에게 아주 크게 혼난다. 그냥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낫다.
그 주 일요일, 경주와 우리 초등학교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교회에 가기로 했다. 교회에 내 또래 친구가 없기에 나는 무척이나 신이 났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도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도착해서도 별 것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한 예배를 견딘다. 사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 언니는 말이야, 화장을 할 때 마음에 안 들면 세수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와..."
"그리고 언니는 남자친구랑 사이가 되게 좋은가 봐. 매일 남자친구 얘기를 해."
경주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가 한 명 있다. 나는 남동생이 있기 때문에 언니나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함께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작별 인사를 한다. 어차피 학교에서 볼 건데 도 집에 가는 시간은 늘 쓸쓸하고 싫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기에 나는 부모님 차를 타고 가족들과 다 같이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작은 뒷 유리를 통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훔쳐본다.
회색 개 한 마리가 도로에 반토막 나 죽어 있었다. 그 앞에 보이는 차의 범퍼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개의 머리는 비탈길 저 아래로 굴러가고 있었다. 아무도 그 개의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저 역겹다고 피하거나 징그럽다며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다. 그 개는 어쩌다 저런 사고를 당한 걸까? 왜 아무도 운전자 탓을 하지 않을까? 개가 아니라 어린아이였다면 당연히 결말은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그들을 돌봐줘야 한다고.
하지만 교회를 나오는 그 누구도 그 개를 위한 기도를 올리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 경주와 나 사이에는 조금의 벽이 생겼다. 같은 반이긴 하지만 경주는 이제 무서운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나의 머리를 가지고 놀려대거나 나에게 툭툭 던지는 말투로 말을 하곤 한다. 이제 나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나에게는 멋진 친구들이 있지도 돈이 많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는 호랑이를 키워."
"나도 그거 우리 집에 있는데 잃어버렸어."
"나도 양언니 있어. 이름은 이은지야."
물론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겠지만 나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 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내가 대체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외로운 일상이 싫었고 그 어떤 관심이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건 분명하다. 아마 그게 이유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