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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빛.

2. 배우 이나영.

by 나린글

새로운 학기가 되었다. 나도 이제 어엿한 졸업학년이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다정한 담임선생님도 계셨다. '이제 나에게도 좋은 일들이 생기는 걸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아빠는 몇 년째 시험을 준비 중이셨다. 정말 다행히도 올해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매일 보던 아빠를 일 년에 한 번 운이 좋으면 두세 번 정도밖에 볼 수 없다. 아빠가 짜증 나기도 하고 보기 싫을 때도 있지만 지금은 그저 공허한 마음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빠의 볼에 입을 맞춰드리는 것뿐이다. 지금도 아빠가 떠나던 아침 이를 닦던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매일 하던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 지하상가에서 산 청치마를 골라 입는다. 그에 맞는 티셔츠를 입고 학교로 나선다. 이제는 나를 반겨주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내가 어릴 때 다녔던 유치원에서 하는 영어 수업을 들으러 간다. 영어 학원이 끝나고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집이 바로 앞이라 사실 걸어서 가도 되지만 그래도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아마 그렇게라도 혼자 있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함께 봉고차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건다.


"배우 이나영 알지?"

"네 들어봤어요."

"둘이 이름이 되게 비슷하네. 이나영은 예쁜데 너는 왜 그러냐?"


나는 오늘도 입을 닫는다. 아저씨는 남자아이들에게 굉장히 잘해준다. 간식을 사줄 때도 있고 쓸데없는 말을 걸며 장난을 치지도 않는다. 나에게 저런 말을 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나도 그처럼 예뻐져야 한다는 걸까? 나는 배우 이나영이랑 이름이 같을 자격이 없다는 걸까? 그 짧은 몇 분간 많은 생각이 든다.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해본다. 그때 내 앞에 앉아있는 낯선 남자아이가 내가 자는 것을 흘끔 확인하더니 고개를 낮춰 내 치마 속을 훔쳐본다. 나는 오늘도 입을 닫는다.


집에 도착하면 할머니가 항상 뭔가를 만들고 계신다. 동생은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조용하고 적막하다. 나는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는 저녁밥을 먹는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반찬은 언제나 맛있다. 밤 8시나 9시가 되어야 엄마가 돌아오시기 때문에 그때까지 숙제를 하거나 티브이를 보며 시간을 때운다. 엄마가 도착하면 밖에서 차 소리가 난다. 우리 집은 3층이기에 어떤 차가 도착했는지 소리를 듣고 구별할 수가 있다.


"엄마 왔다."

"다녀오셨어요 엄마!"

"다녀오셨어요."


엄마가 집에 도착하면 나는 기쁘다. 그래서 가끔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하고 종이꽃을 뿌리기도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엄마이기 때문이겠지.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절대 자녀의 부모 사랑을 이길 수 없다고. 부모를 잃은 자식보다 자식 잃은 부모가 몇 배는 더 슬프다고.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식만큼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마치 작은 우리에 갇혀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자식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부모는 돈이던, 종교건, 그게 무엇이던 자신만의 세상을 스스로 선택하여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자식에게 부모는 세상 그 자체이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이 그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세상 밖에서 어떤 수난과 고난을 겪더라도 집에 돌아와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아이는 행복하다. 아무리 친구들이 그를 괴롭혀도 차별을 당해도 얻어맞아도 그가 돌아갈 수 있는 다정함이 있다면 그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아이는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집에 늦게 도착한 엄마는 피곤에 찌들어 급하게 밥을 먹고 잘 준비를 마친 뒤 잠에 든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니. 엄마와 다정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생존할 뿐이다. 아빠가 자기 전 나의 등을 긁어주며 자장가 노래를 불러주던 게 그리워진다.


방과 후,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엔 친구를 우리 집에 불러 옥상으로 향한다. 우리 집은 3층짜리 작은 빌라이기 때문에 옥상에 비교적 쉽게 출입할 수 있다. 옥상 문이 있는 부분은 문의 높이만큼 높이 솟아 있는데 나는 그 가장 높은 곳을 자주 올라가곤 한다. 올라가는 길이 매우 험하고 위험하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가장자리에는 물탱크가, 그 주위로는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잔뜩 덮여 있다. 오후 5시 정도가 되면 해가 지는 모습이 아주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친구가 집에 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험한 길을 따라 내려간다. 발을 조금만 헛디디면 바로 추락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궁금해진다.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죽을까 아니면 조금 다치고 말까? 죽으면 천국에 가겠지? 그러면 지금 죽는 게 나은 것 아닐까?


"야 빨리 내려와!"

"아 미안. 갈게."


오늘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가지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내일은 다시 교회에 가는 날이다. 내일은 맛있는 밥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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