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에서
나의 결혼 이야기

202001_03

by NaRio

잠자기 전,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침대에 엎드려 유튜브를 보는 것은 나의 소확행이다. 주로 타로 영상을 보지만(예쁜 그림과 분위기, 잔잔한 목소리가 좋다), 간혹 영화 소개 영상을 보기도 한다. 살아가다 보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영화 소개 영상에서 최신 영화 혹은 핫한 영화에 대한 소개를 들으며 정보를 얻곤 한다. 그러다 보면, '이건 정말 내 취향이다', '보고 싶다'하는 영화가 있지만 대부분 대중적이지는 않아서 영화관에서 보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살다 보면 그냥 잊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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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혼이야기>도 그랬다. 독특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라 좋아라 하는 스칼렛 요한슨이 나오는데, 어벤저스가 아니고 삶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가 갔다. 그리고 주인공이 요한슨처럼 배우이기도 하니 더 감정이입이 잘 될 거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스트리밍 서비스 알고리즘으로 추천이 들어왔고, 잊고 있던 기억이 생각나서 보게 되었다.



영화 소개 영상(어떤 영상인 지 기억이 안 난다. 죄송)에서 말했듯이, 제목은 결혼이야기이지만 사실 이혼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부의 이혼, 그것이 무엇이 그리 특별할까. 온갖 프로그램에서 치정에 살인, 폭력, 사고 등 다양한 문제로 인한 이혼을 보아왔다. 사실 직간접적으로 실제 경험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다이내믹한 이유는 없다." 보통 '성격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이유일 뿐이다.

내용 중 남편이 동료와 잠자리를 갖기는 하지만, 부부가 이혼 과정에서 대화를 하면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근본적으론 느 서로에 대한 섭섭함이 더 크다. 가령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가까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실수였다고 여자의 탓을 한다. 그리고 여자는 가족과 커리어가 있는 LA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를 탓한다. 거기에 남자는 뉴욕에서도 충분히 함께 성공하고 있지 않냐고, 생각해본다고 했지 간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응수한다.

그 외에 세세한 내용들이 나오지만, 그중 여자가 "사랑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같이 살 수는 없다."라고 한 부분이 너무나 와닿았다. 정확히 이 문장은 아니었지만, 이 부부가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사랑해서 놓아준다와 같은 비장한 감정도 아니다.


<아래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린 개인적인 결론은 그저 각자 원하는 것을 같은 장소에서 할 수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이다. 여자는 LA에서 남자는 뉴욕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거라고, 각자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그게 문제였던 거 같다. 상대를 사랑하니 함께 있고 싶고 그런데 난 여기 있어야 하는데, 상대는 다른 곳에 있고 싶어 하고, 하지만 사랑하니까 네가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있으면 안 돼? 이렇게 말하는 거다. 결국 서로의 이기심 혹은 자아존중을 위한 노력이었을 거다.

그런데 더 재밌었던 건 주변인들의 태도다. 여자의 엄마와 언니는 여자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는 사위의 편을 들면서 딸에게 왜 헤어지려 하느냐고 따진다. 그러면서도 여자를 자신의 집에 받아주고 손자를 누구보다 잘 돌본다. 이 모습은 전통적인 혹은 사회적 고정관념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맞지만, 결국은 딸의 행복을 막을 수는 없는 엄마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더불어 아들이 정말 감동이었다. 사실 실제 이혼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도 애꿎은 아들만 고생이다. 엄마랑도 이혼 변호사 찾아다니고 아빠랑도 찾아다닌다. 결국 거의 스무 곳 정도를 따라다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그리고 아들이 결국 판결 아닌 판결을 내려준다. LA의 학교가 좋다고 말이다. 그렇게 판단한 데에는 따지도 보면 많은 부분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결국 아들은 엄마와 함께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남자도 여러 이유 속에서도 아들의 결정을 거스르지 않는 쪽으로 가게 된다. 어쨌든 아빠이니, 아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이 빌런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영화상에서...

이 영화에서 좋았던 것은 직설적인 빌런이 없었던 거다. 쌍방과실처럼 누구 하나 잘못한 것도 한 사람만 선한 피해자도 아니다. 결국은 하나의 자아가 또 다른 자아를 만나 함께 지냈지만, 결국 자신을 지키지 못한 상황이 되었을 때 자아를 지키기 위해 떠나고자 한 여자와 그 여자의 떠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난 그렇게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고도 동시적으로 나와 내 주변의 결혼에 이야기를 반영하게 되었다. 나 역시 젊은 내가 몰랐던 나의 자아와 욕망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찾고자 했다. '80년생 김지영'이나' 며느라기'의 이야기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매 순간 당황하고 부딪혀가면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영화 속 여자처럼 떠나진 않았다. 다행히 물리적인 거리가 필요 없을 수 있는 일들을 찾았고, 이 글처럼 온라인 상에서 자아 찾기 프로젝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거 같긴 하다.) 그래도, 비록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 않더라도,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가정의 모습 속 주분의 모습을 하고 있지 못함에 대한 최책감은 항상 시달려왔다.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해서 차려진 밥상을 보고 "밥 냄새가 나서 너무 좋다. 맨날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할 때, 일을 하다가 헐레벌떡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니 유치원 선생님이 "가장 늦게 남았지만 잘 놀았어요"라고 할 때, 자신의 생일인데 며느리가 미역국도 안 끓여줘서 섭섭했다는 시아버님의 푸념을 남편을 통해 들었을 때, 난 항상 죄인이 되었다.

하지만 영화 <결혼이야기> 속 여자와 같은 인물을 보고, 그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공감하고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반응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죄인이 될 필요 없다. 난 잘 해내었다고 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이름 석자를 가지면서 살아가는데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하지 않음이 죄가 될 수는 없을 거다. 희생이 칭찬받을 만한 가치는 되겠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죄는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자아를 조금 더 단단히 해보려 노력 중이다.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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