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감사한 이들을 위하여...

202201_04

by NaRio

얼마 전 졸업한 늦깎이 제자님이 톡을 통해 선물을 보내줬다. 갑작스러운 선물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이미 졸업한 분이시고 성의를 표하고 싶으셨던 거라 생각하고 염치 불고하고 받기로 했다. 그런데 내 주소는 어찌 아셨지? 하고 톡을 다시 보니 선물을 보내면 받는 사람이 주소를 적으면 주문이 되는 구조였다. 이런 신기한 방법이!!

감사의 답장을 하고 미래를 응원했다. 실제 능력 있으신 분이라 멋진 인생 이모작을 하실 거라 의심치 않는다. 그러고 보니 곧 이고, 명절인 만큼 선물이 오고 가는 시즌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난 명절 선물을 주고받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출처: Pinterest 롯데하이마트


명절 선물이라 하면오르는 건, 어린 시절 형형색색의 보자기에 싸여서 집에 들어오던 상자들이었다. 사과, 배, 굴비, 홍시 그리고 스팸, 참치, 칫솔치약세트.... 다소 뻔한 것들이었다. 어린 나로서는 흥미가 별로 없었다. 살림을 하던 엄마 역시 사과나 배가 두세 박스씩 되면 네 식구가 다 먹을 수 없으니 주변에 나누느라 더 바쁜 거 같았다. 물론 아주 간혹 한우가 들어오면 좋긴 했지만, 집을 나서려면 굴비 같은 게 들어와서 부랴부랴 냉동실에 소분해서 넣어놓고 나가느라 약속에 늦을 때도 있었다. 물론 아버지가 선물을 많이 받을 일을 하셨기에 누렸던 호사 아닌 호사였지만, 누가 보냈는 지도 명확하지 않게 비슷비슷한 박스와 보자기들이 쌓여가는 게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이 된 이후에도 명절 때 어르신들에게 선물 보내는 게 너무 힘들다. 매번 뭘 보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선물세트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웬만하면 안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세상이 안 주고 안 받는 분위기라(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섭섭해하시는 분들은 이제 없는 거 같다. 그래서 최근에는 가족을 위한 선물만을 준비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제자님께 선물을 받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그간 감사를 표현하지 못한 분께 선물이라는 핑계를 삼아 감사의 마음을 담은 메시지 정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톡으로 간단히 보낼 수 있으니 괜스레 주소를 물어야 하는 민망한 수고로움도 덜고 말이다. 그래서 한 분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냈다.



돌이켜 보면, 아이를 낳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어떠한 대가 없이 도와주신 분들이 있었다. 이번에 선물을 보낸 분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 남편이 회사를 옮기면서 갓난아이를 데리고 10년 전에 왔다. 그때는 젊은 패기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있으면 뭐든 다 해나갈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갓난아기를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돌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면서 하기엔 힘에 너무나 부쳤다. 그래도 꾸역꾸역 아기를 어린이 집에 보내 두고, 혹은 아기가 자는 시간을 쪼개서 내 공부를 했다. 조금만 아이가 더 크면, 내가 조금만 더 공부를 하면 곧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쉽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과정을 너무나 미련하게 혼자 꽁꽁 싸고 해 나가면서 나는 몸과 마음이 다 피폐해졌다. 간혹 연예인들이 공황장애의 증상을 이야기하면, 그 당시에 나도 그 초기 증세가 있었던 거 같다. 숨을 맘 놓고 쉬어본 적이 언제인 지 기억도 안 났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꾸역꾸역 박사논문을 썼지만, 막상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할 엄두가 안 났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몇 년간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 지도 기억이 안 났고 거울 속 내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몇 분이 이렇게 집에 틀어박혀있는 나를 안쓰러워해 주셨다. 그리고 불러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소개도 해주었고, 일거리도 만들어주셨다. 이 마음이 너무나 감사했지만 처음엔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방금 전까지 아기보다 나온 나를 어떻게 멋지게 소개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예전에 그렇게 활발하게 사람들과 교류했던 내 모습은 한 톨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분들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그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내가 사회에 나갈 수 있을 거 같아서 조금씩 노력했다. 매번 식은땀이 났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번 두 번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일을 하면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나갔다. 그리고 그분들 없이도 스스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아기새가 알을 깨고 나올 때, 그 껍질을 깨기 어려워하면 어미새가 부리로 조금씩 쪼아서 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도 그때 그랬던 거 같다. 단단히 싸고 있는 껍질을 깨야하는 건 아는데, 내가 나가도 되는지, 충분히 자란 건 지,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신이 없었던 거 같다. 그때 그분들은 나에게 충분히 자격이 된다는 것을 손을 내밀어 알려주셨다. 그분들의 그 따듯한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에 도움을 주셨음에 너무나 감사하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설 명절을 맞아, 너무나 간단하게 보낸 선물과 함께 적은 감사의 메시지로 그 마음이 전해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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