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다시 시행(?)된 명절

20220105-0201

by NaRio

기어코 설이 왔다!

일 년에 두 번, 한민족의 대 명절이 온다. 집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일상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시기라는 거다. 그리고 지난 2년간 팬데믹 상황에서 명절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고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는 시기이자 이벤트 이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의 추석 때는 팬데믹 상황 속 명절은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2022년에는 오미크론 변이종으로 확진자 수는 더 급증했고 정부는 움직임을 자제해달라고 발표했다. 그래도 작년보다 극적인 변화는 없어도, 우리 가족의 경우 모두 3차 접종까지 마쳤고(정말 성실하게도!) 직계가족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번엔 큰 이견없이 모이기로 했다.

그런데, 작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는 건 괜찮았지만 뭔가 다시 명절증후군 비슷한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 같기도 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스스로 다짐을 했고, 글로 적었다.



떠나기 전의 다짐 : 여유 있는 명절을 보내자!

이번 명절엔 '토일'이 앞에 있고 뒤에 '월화수'가 붙는다. 이런 명절엔 언제 떠날 것인 지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진다. 그래서 예전엔 빨리 시댁에 가자고 할까 봐 지례 겁먹고 걱정에 동동거렸다. 그런 제안을 하면 뭐라고 응수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말이다. 결국은 그 긴장감에 져버려서 싸움이 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명절을 몇 번 패스해버려서 감이 떨어진 것인 지, 결혼 십수 년 차의 여유인 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 했다. '뭐라 해도 설 전날에 올라가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여유 있게 갖고자 했다. 하지만 이건 나만의 생각이었고 남편은 결국 어제 감정을 터뜨렸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아들과 며느리의 틀 거리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나 보다.



'뭐, 그런 당신 문제고...'

이젠 이런 생각이 조금 덜 어렵게 나온다. 신혼 때는 '아들의 의무, 며느리의 의무'라 이름 붙여진 명패 속 틀에 맞게 행동을 하지 않거나 상황이 안되면 화를 내는 남편에게 너무나 속상하고 그 상황이 억울했다. 내가 약속한 것도 아닌데, 결혼과 동시에 붙여버린 그 의무들이 사실 뭔지도 정확하게 모르겠고 그것을 하지 않는다는 타박이 너무나 야속했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이런 것도 이해를 못 해주지?'


하지만 이제 사랑? 그 건건 20대 때나 하는 거라는 것도, 실제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어도 아들 혹은 대한민국 남자로서 가지는 의미 없는 의무감과는 별개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것도 이제는 잘 안다. 숱한 어깨 넘어 심리학으로 배운 논리에 따르면, 그냥 그런 남자의 감정을 잘 읽어주고 달래주어야 하는 거다.

'그래, 네가 그런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지.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니까 괜찮아.'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맹점이 있다. 여자도 화가 나는데, 언제 그 감정을 읽어주고 있을까! 쉽게 말해 아이면 참고 읽어주고 공감해주겠지만, 같은 어른으로 맨날 왜 그렇게 해줘야 하는지 의아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젠 이런 생각은 한다.

'그런 감정이 드는구나. 하지만 그건 당신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야.'


이렇게 생각을 하고 글을 쓰다가 미처 다 끝내지 못하고 시댁으로 출발했다.




KakaoTalk_20220203_095440635.jpg 세배하는 딸냄과 조카



명절을 마치고 : 역시 쉽지 않구나.

출발도 순조로웠고, 도착해서도 반겨주시는 시부모님과 시조카들 덕분에 기분도 좋았다. 게다가 친척들이 많이 오지 않으니 음식도 조금만 준비하고자 한 어머님 덕분에 평상시보다 적은 양의 잡채를 만들어도 되었다. 그리고 맛난 한우를 시댁으로 주문해두고 직접 구워준 남편 덕분에 설 전날 비교적 즐겁게 지냈다. 그리고 설날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아이들에게 세배를 받고, 서둘러 친정식구들을 만나러 가서 수다와 식사를 하고, 동생네에서 아이들이 노는 거 보면서 자고, 다음날 아침을 먹고 집으로 왔다.

음식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친척 어른들이 별로 오시지 않았으니 예년에 비해 수월한 명절 이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은 너무 힘들었다. 음식양이 적어도 세끼를 차리고 치워야 하고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며 잠자리 자체로 내 집처럼 편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남편이 도와주기고 했지만, 딸내미가 엄마 힘들겠다고 위로해주고 조카들도 큰엄마가 바쁜 걸 알아주는 걸 보면 뭔가 일을 하긴 한 거 같다. 그래서 좀 더 놀다 가라는 동생네의 호의를 뿌리치고 집으로 서둘어왔고, 와서야 쉴 수 있었다.

머리와 마음, 몸은 정말 따로 노는 거 같다. 그리고 다들 편하게 대해주려 해도 그저 다른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은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집에 돌아와서 SNS를 구경하다가 본 친구네가 부러웠다. 시댁도 친정도 집에서 멀지 않아서,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식사하고 시간을 보내다 자기 집에서 자고 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 년에 두 번이니 이 정도만이라면 견딜만하다는 생각은 든다. 예전처럼 6시간씩 송편을 만들거나 반나절 이상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명절을 집에서 쉬면서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팬데믹 상황이 나아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족이 모이는 날이라는 의미가 없어지진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실 명절이 다시 시행? 된다면, 예전처럼 힘들까 봐 걱정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어머님은 음식 양을 오히려 줄이셨다. 너무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 나눠주고도 남아서 한 짐 싸오면 결국 상해서 버려야 했던 그 시절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다음 명절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 줄었다.




명절, 며느리만 희생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시간이다. 모두가 행복해지게 바꾸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고 여러 아이디어가 나온다. 나도 그중 몇 가지는 시행하고 있다. 이틀 전에 올라가던 것을 전날 일찍 가는 걸로 바꿨고, 출발부터 편한 옷을 입고 가서 시댁에 들어가자마자 일을 빨리 시작해버린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나면 방구석에서 눈치 보지 않고 시댁 근처 커피숍에서 한숨 돌리기도 한다. 더불어 명절날에는 해 떨어지기 전에 친정식구들을 만나러 간다. 그런데 사실 이 이상은 어떻게 해야 내가 더 편할지 잘 모르겠다. 요즘 트렌드로는 명절에도 각자의 집에 가는 거겠지만, 그러기엔 아이가 눈에 밟힌다. 이런 경험도 아이가 입시의 물결에 휩쓸리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조금 역할극을 해서라도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단란한 삼대 가족의 모습을 아이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시행된 명절은 예전과 조금은 달라졌고, 또 변화가 힘든 부분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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