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4
결혼 초, 뭔가 마음에 답답증이 항상 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잘못된 게 하나도 없는데, 뭔가 나 혼자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다들 괜찮다는데 나만 힘들었다. 그 이유를 모르겠어서 예전에 있던 미즈넷에 두루뭉술하게 쓴 적이 있다.
분명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시어른들과 대화가 안 되는 느낌이 든다. 남편도 나의 이런 상황을 이해 못 하는 듯하다. 이런 식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당시 나도 내 감정이 뭔지 모르겠고 자세히 상황을 밝히기엔 쑥스럽기도 해서 그저 불명확하게 내 느낌만 적었었다. 그때 몇 분이 답글을 주셨는데, 무슨 이야기인 지 자세히 하면 조금 더 조언해주기 좋을 거 같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기에, 그리고 내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누구의 잘못인 지 모르겠기에 다시 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결혼한 지 십수 년이 흘렸고, 시어른들과는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소통을 하고 있다. 물론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관계이다. 그런데 얼마 전 시즌2를 시작한 '며느라기'에서 예전에 딱 내가 느꼈던 점을 한 마디로 요약해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7회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당시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이 되었다. 7회 에피소드를 보면서 든 생각은 내가 예전에 했던 생각과 같았다. 오로지 며느리 한 명만 불편하면, 모두가 편안하다는 거다. 첫째 며느리도 자신의 일이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만 감내해내면, 남편도 양가 부모님도 심지어 딸도 편하다. 주인공인 둘째 며느리도 회사 일에 대한 욕심? 만 버리면 모두가 편하다. 그렇기에 남편도 어른들도 다 이들을 욕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인 듯 쳐다보고 대한다.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말이다.
https://tv.kakao.com/v/426436271
그리고 무엇보다 아래의 클립에서처럼, 아들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시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민사린이 휩싸인 복잡한 감정을 나 역시 정말 자주 느꼈다. 시어머니의 모습과 말을 보면, 더없이 착하고 좋은 분이다. 아들과 가족 걱정에 한숨이 늘고 며느리 눈치 보느라 몇 번을 생각하다가 겨우 전화를 해서 상처 주지 않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분에게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내 경우도 그랬다. 그래서 이런 내 모습이,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는 내 마음이 너무나 죄스러웠다. 계속해서 '죄송해요'를 연발하는 민사린처럼 말이다. 그런데 과연 민사린은 무엇을 잘못한 걸까. 한 가지 잘못이라면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한 거다. 그런데 그게 과연 죄인 걸까?
https://tv.kakao.com/v/426449377
그 시절을 몇 년 겪고 나서, 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좋은 며느리 하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그래도 여전히 죄인인 것은 맞지만 말이다.
명절 때 조금 더 일찍 못가도 죄, 편하게 시어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죄, 음식을 잘 못하는 것도 죄, 남편이 살쪄도 죄, 살 빠져도 죄, 남편 신발이 더러워도 죄, 아이가 통통하지 않아도 죄, 시댁에 오래 있지 않으려 해도 죄, 전화를 충분히? 안 드려도 죄.... 조금만 삐끗하거나 한 눈 팔아도 죄인이 된다. 그렇기에 그냥 가벼운 죄는 짓는 걸로 하고 편하게 지내는 것이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편했다.
그 누구도 잘못된 사람은 없다. 그저 각자의 입장이 다른 거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다. 그 순간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은 든다. 이렇게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간격이 있는데, 이해하는 척하며 계속 가족 코스프레를 하면서 사는 게 맞는 걸까? 척을 하다 보면 진짜가 될 수도 있는 걸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