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엔 난 내 생일이 너무나 좋았다. 일 년에 단 하루 나를 위한 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살면서 생일에도 미역국 내가 끓이고, 케이크 사러도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하고 그런 것이 너무 귀찮아졌다. 그래도 남편이 생일에는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 데리고 가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말 아파트 같은 라인으로 이사를 온 친구와 곧잘 놀던 딸아이가 어느 날 뭔가를 잔뜩 사들고 들어왔다. 곧 친구가 생일이라 다이소에 가서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사 왔다는 거다. 그리곤 직접 포장지를 수채화 물감으로 만들어 하나씩 싸기 시작했다. 다이소 물건이라는 게 사실 고가가 없으니 펜이나 마스킹 테이프 등 아이들이 요즘 좋아할 만한 자질 구래 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걸 색색의 물감으로 칠하고 말려서 하나씩 싸는 딸을 보니 너무 예뻤다. 친구도 분명 좋아할 것 같았다. 그 이쁜 모습에 장난을 치고 싶었다.
"칫, 00 이만 해주고! 엄마도 곧 생일인데... 엄마도 이쁜 거 되게 좋아하는데~~"
그러니 딸아이가
"알았어. 엄마도 해줄게! 진짜야~~"
그렇게 웃어넘겼다.
요즘 학원 다니느라, 노느라 여러모로 제 딴엔 바쁜 아이가 엄마 챙겨줄 시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설 연휴에 잠깐 시간이 나는 틈에 물감을 꺼내서 포장지 만든다며 이것저것 그리고 색을 칠했다. 그 포장지만으로도 너무 예뻤고, 행복했다.
그리고 며칠 후, 집을 정리하다가 빈 박스들을 버리려고 현관에 내놓은 것을 보더니 딸아이가,
"엄마 나 이거 하나 가져가도 돼?"
"음.. 그래!"
그리곤 방에 들어가 뭔가를 혼자 꼼지락꼼지락 하더니, 그날 낮에
"엄마! 내가, 엄마가 엄청 좋아할 만한 선물 준비했어. 내가 엄마 취향 잘 알잖아?"
"그래? 엄청 기대되는데?"
실제로 내가 문구류나 캐릭터 상품을 좋아하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아이이기에 예쁜 걸 잘 골랐을 거 같았다. 그리고 예전에 한 말을 기억했다가 정말로 자기 용돈을 털어서 샀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생일날, 아이는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잔뜩 행복한 기대를 하는, 내가 좋아하는 그 표정을 하면서 말이다.
"엄마, 생일 축하해. 선물이야."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포장지로 싸인 작고 예쁜 것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얼른 풀어봐"
포장지마다 색도 다르고 문양도 달라서 너무 예뻤기에 막 뜯을 수 없었다. 게다가 세상 유일무이한 포장지이니... 하나씩 곱게 뜯어보니, 그 안에는 예쁜 무늬의 마스킹 테이프, 형광색 볼펜, 스티커, 다이어리, 팔찌 등이 들어있었다. 진짜로 너무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엄마를 생각하며 하나씩 고르고 포장지를 만들고, 싸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행복했다.
"예쁘지? 엄마... 그런데 나도 써도 돼?"
"하하하! 그럼 그럼 당연하지!"
엄마가 좋아할 것을 모은 것들
사춘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딸아이는 아직도 엄마를 너무나 좋아해 준다. 보드게임도 잘할 줄 모르고 체력이 달려서 오래 놀아주지도 못해도 딸아이는 엄마랑 있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매일 '엄마 사랑해'란 말을 예쁘게 해 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집 곳곳에 메모가 붙어있다. 모니터 앞 메모꽂이에도, 달력 옆에도, 부엌에도 '엄마 사랑해'라는 딸아이의 예쁜 글씨는 볼 때마다 마음에 따듯한 작은 온기를 준다.
누구나 살면서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나 역시 크고 작은 힘든 일들이 있다. 그럼에도 딸아이의 작은 메모, 웃음, 행동, 말소리는 항상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너무나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