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7(토)
친구를 만나러 집을 나섰다. 날이 조금 흐리다고 생각했는데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즈음 예기치 않게 많은 눈이 내렸다. 요즘도 길 고양이 다라의 밥을 매일마다 챙겨주는데, 겨울엔 밥도 식고, 물도 금방 얼어서 고양이 집 박스를 구해 그 안에 밥을 넣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 오전에 고양이 집을 청소하고 뚜껑을 열어두고 나온 게 생각났다. 눈이 내릴 줄 알았으면 뚜껑을 덮어 놓고 나오는 건데... 다라의 밥그릇에 눈이 쌓일까 걱정되어서 집에 있는 토토에게 연락했다.
"토토야, 미안한데 나 부탁하나 해도 돼?"
나는 어릴 때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면, '네가 진작에 알아서 했어야지, 너는 왜 항상 그 모양이냐'하는 류의 핀잔을 듣곤 했다. 가족도 때로는 남남이라는 것을, 자녀에게 헌신적이지 않은 부모도 존재한다는 걸 자라면서 느꼈다. 세상에는 자녀가 숙제한 노트를 집에 두고 가, 선생님에게 체벌을 당할 걸 알면서도 노트를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거나, 장마철 장대비를 맞고 집에 돌아올 걸 알면서도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가는 것보다 좋아하는 팝송을 들으며 마시는 차 한잔이 더 소중한 어른도 있는 것이다. 하물며 내 가족이 혼자 돌보는, 길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는 일도 귀찮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모처럼 주말이니 지금쯤이면 쉬고 있을 시간인데, 이런 부탁을 해도 괜찮을지, 토토가 짜증 내진 않을까란 생각에 '미안한데'라는 말을 하면서도 조금 망설였다.
그런데 토토는 내 부탁이 뭔지 듣지도 않고 이렇게 답했다.
응, 다 들어줄게-라고.
"밖에 눈이 많이 오는데 내가 다라 집에 뚜껑을 열어두고 왔어... 물그릇에 따뜻한 물이랑 밥 좀 채워주고 뚜껑 좀 덮어주면 안 될까?" 하니,
"응, 알겠어" 하는 답이 돌아왔다.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흔쾌히 알겠다고 말해주는 대답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서는 혹시라도 물이 얼었을까 싶어,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대문 밖으로 나갔다. 고양이 집 뚜껑을 열었더니 그 사이 다라가 밥을 야무지게 먹고 돌아갔나 보더라. 토토가 낮에 채워준 물은 아직도 온기를 품고 있었다. 찬바람이 부는 밤이었지만 하나도 춥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