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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Mar 13. 2020

영국에도 내 팬이!

2020. 01. 03(금)


친구가 영국에서 서울로 여행을 와서 머물고 있다. 약 십 이년 전, 학생 때 밴쿠버 어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브라질 친구였다. 서울에 여행을 올 예정이라는 파브리시오(Fabricio)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심장이 요동쳤다. '나 영어 다 잊어버렸는데 어쩌지!' 하지만, 그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우면 그림을 그려서라도 하겠다는 각오로 친구를 만났다. 파브리시오는 여전히 장난기 많았으며 착했고, 그의 파트너 피엘(Pierr)은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토토와 넷이서 밥도 먹고, 절에도 가고, 홍대 VR 룸에도 가고(아쉽게도 나는 임산부라서 체험은 할 수 없었다), 노래방에도 가고, 인생 네 컷 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던 인연이었는데, 잊지 않고 연락을 주었던 것에 기뻤다. 이번 주에 그 친구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고, 오늘은 출국 전에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자리였다.



두 커플에게 어떤 선물을 주면 좋을까 싶어 고민하다가 유기 숟가락 2벌 세트와 카드, 그리고 내가 쓰고 그린 동화책을 선물로 주었다. 파브리시오와 피엘은 내가 준 선물을 받고 무척 기뻐했다. 십 년 전, 밴쿠버 공항에서 브라질 집에 전화해 한국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한국에 가고 싶다며 울었던 파브리시오는 서른 살이 되어서도 똑같았다. 동화책을 받고 눈물이 터진 파브리시오에게 고마운 마음이 일어 뭉클했다. 



사실 어제부터 꽤 마음이 고단했던 터였다. 어제는 모 병원 응급실에 아빠가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다녀왔다. 아빠가 아프고 싶어서 아팠겠냐만은, 평소의 건강하지 않은 생활 방식 때문에 입원한 경우라, 다음 달이 출산 예정인 내가 아빠를 살피러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났다. 근래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연재하던 일기도 꽤 긴 시간 동안 업로드하지 못했다. 오늘부터 다시 마음먹고 작업해야지 싶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아빠의 심부름으로 연희동에서 구파발까지 짐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느라 지치기도 했다. 나이가 드니 가족의 문제까지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늘어난다. 예전과 달리 삶이 여러모로 부산스러워지는 느낌이다.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이런 걱정 없이 작업할 수 있었을 때 많이 많이 해둘걸... 하는 미련 가득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짜증이 나서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내 작업을 보고 좋아해 주는 파브리시오 덕에 이런 마음이 풀어졌다. 파브리시오와 피엘이 걱정할까 봐 아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좋아해 줘서 무척 기쁘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어차피 내 영어 실력도 그 정도까지여서 다행이었다. 동화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작업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 영국에도 내 팬이 있다'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작업해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올해의 계획을 물어보길래, 연재 중인 임신 일기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구글 자동 번역 기능으로 임신 일기도 볼 거라고 했는데... 잘 보고 있니? 파브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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