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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un 18. 2024

가족을 소개해 줄, 어린이를 만나러 갑니다.

어린이가 소개하는 우리 가족을 시작하며,





"누나, 혹시 강아지나 고양이 길러?"

마꼬는 미끄럼틀을 함께 타던 누나에게 물었다. 마꼬는 이전에도 종종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에게 자기가 집에서 큰 개를 기른다며(!) 자랑을 했던 터라 이번에도 또 그러나 보다 싶었다. 방금도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누나에게 다섯 손가락을 쫙 벌려 제 나이를 밝혔고, 이어서 종알종알 대화를 이어가던 참이었다. 나는 미끄럼틀 아래에 서서 혹여 아이들이 다칠까 올려다보다가 사뭇 진지해진 마꼬의 얼굴을 보고는 귀를 기울이게 됐다.

"아니!" 올해 일곱 살이라던 누나의 대답은 간결했다. 누나는 미끄럼틀을 빠르게 내려갔다. 

'아... 식구들이 동물을 안 좋아하나 보네.' 괜히 마음이 아쉬워진다. 마꼬는 쉼 없이 종알종알 말을 이어갔다. 

"나는 집에서 포카라는 검은색 개를 길러. 나는 누나가... 개야..." 말끝을 흐리는 마꼬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어린이의 얼굴에서 나오기 힘든 모양새의 주름이라 귀여워서 순간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그 뒤로도 어린이 둘은 저녁을 먹으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참 동안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며 신나게 놀았다.



며칠 뒤 마꼬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우리 유치원에는 혼자인 친구도 많은데, 형이 있는 친구도 있고, 누나가 있는 친구도 있다!"

"그래? 형이랑 누나 있는 친구들은 좋겠네."

"응 근데, 개가 누나인 건 나 혼자야." 

엇. 이것은 무언가 전하고 싶은 바가 있는  것 같은 대화이다. 

"그래...? 마꼬야 혹시 포카가 누나인 게 싫었어?" 하고 묻자,

바로 "응..."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앗. 이거였구나. 그리고 곧이어 "친구들한테는 비밀이면 좋겠어."라는 마꼬의 솔직한 마음도 들을 수 있었다. 다섯 살 어린이의 고민의 무게가 앙증맞고 귀여워서 웃음이 났지만, 나름 다섯 살 인생의 가장 큰 고비이자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럴만했던 게, (나중에 남편을 통해 들은 얘기이지만) 얼마 전, 하원 후에 남편이 포카와 마꼬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단다.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에게 우리 집 검은 개 포카는 주목의 대상이 되었고... 놀러 나왔던 동네 아이들 대부분이 포카와 인사하려고 모여들었는데, 마꼬 혼자 멀리 떨어진 풀숲에 들어가 놀았다고 했다. 마꼬의 속마음을 알 리가 없던 남편은 구경 온 어린이들에게 일일이 포카가 마꼬의 누나라고 친절히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올해 아홉 살이 된 포카는 늘 마꼬 곁에 있고 싶어 한다. 간식을 먹을 때도, 그림책을 볼 때도 심지어 매일 아침, 아기 변기에 앉았을 때에도 언제나 마꼬 옆에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앉거나 누워있었다. 포카는 종종 나랑도 엉덩이를 붙이고 쉴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포카의 보드라운 털과 온기를 통해 개가 가진 다정함을 생각한다. 따뜻함을 통해 전해지는 잔잔하고 진중한 마음 같은 것들. 


하지만 마음이 다정한 개라고 어린이와 지내는 것이 평탄한 건 아니더라. 

영유아 시기의 마꼬는 반갑다고 흔드는 포카 꼬리의 반동과 타격감(?)이 크고 아파서 울었고, 신나서 달리던 포카가 앞 발로 밀치는 바람에 뒤로 나자빠진 적도 있다.(이때 나에게 호되게 혼난 이후로 포카는 마꼬에게 같은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마꼬가 어린이가 된 후로도, 마꼬가 겪은 봉변은 자잘하게 이어졌다. 포카가 빠르게 턴을 하다 앉아 있던 마꼬의 코를 몸으로 쳐서 코피가 철철 나기도 하고, 모래 놀이터에서 놀이  할 때 자칫 자리를 잘못 잡으면 구덩이 파던 포카가 던진 모래를 흠뻑 뒤집어쓰고 울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사건들로 포카는 지난 5년 동안, 언니와 오빠에게 꾸중을 듣고, 심통이 났다는 이유로 마꼬가 포카의 엉덩이를 발로 밀어내기도 하고, 간식을 빼앗아 먹으면 동생이 알감자만 한 주먹으로 팡팡 때려 등을 맞기도 했다. 그래도 포카는 언제나 마꼬 곁에 있다. 약간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좋은걸'하는 태도로...




가족의 일이라면 뭐든 잘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포카라도 양보하지 않는 것도 있다. 남편과 내가 포카에게 지어 준 '평화주의자'라는 별명답게, 집 안에서 불편한 기운이 생기는 것만큼은 막고 싶어하는 것. 가족 구성원으로서 포카가 자처한 역할은 모두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다. 마꼬를 훈육하다 내 언성이 높아질 때면, 포카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인형이나 공을 찾아와 입에 물고, 초승달 모양인 흰자위를 보이며 마꼬와 나 사이에 끼어든다. 엉덩이와 꼬리를 한껏 씰룩이면서. '아니, 그게 그런 뜻인지 어떻게 다 알아?'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 개가 한 지붕 아래 가족으로 지내다 보니, 비언어적 표현에도 익숙해졌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가족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은 모두의 눈빛에 깃들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반려 가구 552만 가구의 시대, 이전에는 사람의 행복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하려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늘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반려동물이 가지는 연대감, 소속감이 이전보다 더 두터워졌다. 우리 집 두 말썽쟁이인 포카와 마꼬의 일상처럼, 서로의 사랑과 유대감을 끈끈히 쌓아가며 어린이 인생에서 만난 첫 번째 털 동생이자, 형제, 자매인 반려동물과 함께 자라는 어린이들의 경험담을 듣고 싶었다. 

우리동생생명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하는 <어린이가 소개하는 우리 가족> 프로젝트를 통해 6월과 7월 사이, 9가구를 방문해 최소 10명의 어린이와 여섯 마리의 고양이, 네 마리의 강아지 그리고 햄스터 한 마리를 만날 예정이다. 

영상 촬영과 편집은 만화가 허안나 작가님이 동행해 담당해 주실 예정. 나는 마꼬의 엄마이자, 포카의 언니로써 어린이들에게 작은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곰곰하게 받아올 생각이며, 글로 기록해 보려고 한다. 사랑스러운 만남과 이어질 대화를 수려하게 기록하기에 부족한 글솜씨를 지녔지만, 오래오래 기억해두고 싶어서 걱정은 내려두고, 일단 시작해 본다. 





Illust. 윤나리(일러스트 스튜디오 포카)





<우리동생생명사회적협동조합> 

https://cafe.naver.com/animalscoop/3511


영상 인터뷰에 참여할 어린이 모집(모집마감)

https://blog.naver.com/animalscoop/223469937658

* 위 프로젝트는 '우리동생동물병원사회적협동조합'과 예술인복지재단 '예술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참고기사. [소년중앙] 반려가구 552만 시대,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하려면 (김현정 기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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