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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Sep 30. 2019

엄마가 나의 임신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어

2019.7.14(일)

일요일 아침이다. 토토는 여유로움을 한 껏 느껴보지도 못하고 배고프다는 나의 성화에 여느 주말보다 이르게 일어났다. 토토는 콩나물을 다듬고, 씻어서 데친 뒤 콩나물 무침을 했고, 절반은 남겨두었다가 국을 끓였다. 냄비가 팔팔 끓어오르자 내 거는 국그릇에 담에 냉장고에 넣어서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우리는 갖지은 콩나물 밥과 콩나물 무침, 콩나물 국을 나눠 먹었다. 야채 통에 넣어뒀던 콩나물이 빛을 발한 날이었다. 시원한 국물을 마시니 울렁대던 속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맘 카페에 가입해서 게시판 글을 볼 때마다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 먹고 싶다는 글이 있었는데 그런 분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것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앞으로도 평생 내 소식을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다. 예기치 못하게 강아지를 입양하고 기르게 되면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와 현실감을 차차 알게 되었다. (강아지와 아이 양육을 견줄 바는 아니겠지만, 순간순간 엄마는 그때 나에게, 언니에게 왜 그랬을까 싶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다그칠 일이 아니었는데...) 엄마는 육아의 책임감, 무게감에 부담감을 느끼고, 늘 덜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마음의 여유가 부족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내 나이 즈음, 아이가 둘 씩이나 있는 남자와 결혼했다. 삼십 대 중반이면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나이가 아닌지. 하지만 엄마는 언니와 나를 보며 입버릇처럼 '너희 때문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결혼 준비할 때는 엄마와 아빠가 별거 중이었으므로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엄마가 금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빼고는 아무것도 상의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결혼 준비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카페 커뮤니티를 이용했다. 언니에게 조언을 구한 적도 있었지만, 이미 결혼한 지 십 수년이 지난 사람이라 요즘엔 어떤 걸 준비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는 카페에 질문하고 답을 얻는 편이 수월했다.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질문방에 글을 올리면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간혹 비슷한 처지에 놓인 분들의 글을 보면 그날 밤은 많이 울었다. 한 편으로는 가족의 도움으로 결혼 준비를 차근히 해가는 짝꿍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친엄마는 나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와의 결혼생활을 견딜 수 없어서 이혼했다고 한다. 소식도 모른 채 살다가 성인이 된 후 언니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는데 함께한 시간이 없었음에도 '엄마'로서의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간간히 만나면 느끼는 거지만, 얼굴이 참 밝다. 무탈히 다 큰 딸과 사위를 두어 행복한 얼굴이다. 어른들은 왜 이렇게 지난 시간을 잘 잊는지.


엄마가 둘이어도, 엄마가 없는 거나 다름없어서 여자로서의 일들을 혼자 잘해나가야 했다. 이러한 나의 상황을 앎에도 간혹 신혼 초에 시가에서 서운한 말을 듣고 왔다고 하면, '부모님께 말해서 도와달라고 하라'는 조언(?)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 그것뿐이라서 그랬을 거라 생각해 크게 서운하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런 기분을 겪을 때마다 내가 '보통의 삶'과 다르게 살아왔나 보다고 생각하게 된다. 힘이 되는 가족을 갖지 못해서 부모가 원망스러운 시기는 지났지만, 이런 상황에서 느껴지는 피곤함은 솔직히 감출 수 없다.


결혼 준비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를 만날 준비도 혼자서 척척하고 있다. 관련 서적도 많이 읽고, 씩씩하게 잘 먹고, 잘 잔다. 한 때는 친정의 도움 없이 아이를 케어해야 할 현실에 용기가 나지 않아서 아이를 갖는 것에 엄두가 안 났다. 그때 언니가 웃으면서 '낳기나 해. 내가 봐줄게'라고 했었는데,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단 한 마디가 듣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고, 둘이니까(아, 포카까지 셋인가!). 친정의 도움 없이도 아이를 잘 양육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카페에서 보았으니까 이전보다는 마음이 가볍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결혼 후에도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그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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