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튜디오 포카 Oct 02. 2019

저 세상 배고픔

2019.7.23(화)




늦은 밤 회의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전에 저녁 식사를 거른 게 생각났다. 저녁을 안 먹었다고 생각하니 배가 더 고파졌다. 요즘 내가 느끼는 배고픔은 평범한 배고픔이 아니다. 속 안에서 요동치는 무언가가 있는, 지구가 끝장날 것 같은 절박한 배고픔이다. 나는 이런 기분을 느낄 때마다 친구들에게 '이건 이 세상 배고픔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살면서 식욕이 이렇게 솟구쳤던 적이 있던가?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 어쩔 땐 공포감까지도 드는데 이를 테면 갑자기 전쟁이 난다거나... 하면 나는 이 배고픔을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새삼 전쟁 시절에 배곯아가면서 아이 낳고 기르셨던 분들이 위대해 보인다.


 '뭐라도 사갈까...' 인도 한편에 멈춰 서서 눈에 보이는 간판들을 급히 훑어보았다. 결혼 후에 대체로 요리는 내가, 설거지는 토토의 몫이었는데, 요즘 음식을 만들어먹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토토는 그런 나를 대신해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해주었다. 오늘도 나는 뭔가를 만들어 먹을 기력이 없으니 토토 몫까지 먹을거리를 포장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뭐든 당기는 것을 배불리 먹고, 이불 위에 빨리 누워 쉬고 싶었다. 해만 떨어지면 기진맥진 해지는 탓이다. 몇 가지 선택지를 놓고 짧게 고민하다 망설임 없이 맥도널드에 들어가 치즈버거 단품 하나와 세트 한 개를 포장했다. 평소에 햄버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임신 전에는 고기를 제외한 식단을 유지하기도 했었는데. 프랜차이즈 버거집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갔다니... 밝히건대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다.


햄버거가 든 봉투를 들고 집에 왔다. 토토에게 연락해보니 이제야 회사에서 출발했단다. 먼저 밥 먹고 쉬고 있겠다고 하고 햄버거 포장지를 벗겨서 한 입 베어 먹었다. 세상에. 너무 맛있었다... 적당히 식은 햄버거 패티와 달큼한 케첩, 짭조름한 치즈와 피클 향... 너무 맛있어서 홀린 듯이 햄버거 두 개를 모조리 먹어버렸다. 토니 스타크가 치즈버거를 좋아하는 이유를, 임신하고 나니 이해하게 된 것 같다(나중에 토토에게 말했더니 토니 스타크는 버거킹 치즈버거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먹덧으로 치즈버거를 재발견하게 되다니. 앞으로는 또 뭐가 먹고 싶어 질까... 제발 어려운 선택지만은 아니길! 다시 한번 밝히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그건 내 의지는 아닐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마다 그분이 오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