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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Oct 11. 2019

아침마다 그분이 오셔

2019.8.5(월)

아침마다 그분이 오신다. 아주 맛깔나고 생생한 모습으로. 

나는 요즘 잠에서 깨면 그날 먹어야 하는 음식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계시받는 먹덧'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가 먹고 싶은 건지, 마꼬가 먹고 싶어 하는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아직 내 뱃속의 태아는 아직 난황에서 영양분을 얻는 시기이므로), 계시를 받기 시작한 후로는 먹기 위한 일과를 바지런히 짰다. 참, 아침식사도 거를 수 없다.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잘 챙겨 먹는다. 외부 일정이 있는 날에는 약속 장소 인근에 계시받은 메뉴를 파는 음식점이 있을지도 미리 검색을 해둔다. 오로지 그 음식을 먹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살면서 이렇게 계획적으로 움직인 적이 있었는지... 공부를 이렇게 꼼꼼하게 했더라면! 

임신 전에는 먹는 것에 큰 열정이 없던 나였기에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토토는 늘 신기해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오늘의 계시받은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곤 한다. 



오늘 아침에 계시받은 메뉴는 똠양꿍이다. 태국 음식을 좋아해서 여러 곳에 먹어보러 다녀본 편이라 인근의 맛있는 똠양꿍 집은 꿰고 있다. 익숙한 음식이어서 참 다행이다. 간혹 임신 중 평소에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이 당겨서 무척 고생했다는 분의 경험도 들어본 터라... 좋아하는 음식이 먹고 싶어 질 때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밝히기 좀 부끄러운 이상한 습관이 있는데 친구나 지인을 만날 때, (건강상의 이유나 비건식에 도전했던 경우를 제외하곤) 식사메뉴를 정하는 시점이 오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상대도 좋아하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의 선택과 다른 음식을 고르더라도 나는 뭐든 잘 먹는 식성을 가졌기 때문에 따라서 잘 먹는다. 반대로 상대가 나의 선택과 같은 메뉴를 고른다면 취향이 같다며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마꼬와는 경험은 생경하다. 누군가와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하는 일에 이렇게 호흡이 잘 맞았던 적이 있었는지! 아마도 토토 이후에 처음일 거다. 토토는 나와 음식 취향이 많은 부분 같기도 했지만, 늘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함께 먹어줬다. 마꼬가 그런 토토의 성향을 닮은 걸까. 식당에는 나 혼자 들어가지만, 둘이 먹는다는 생각에 가끔은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페어 시식단이 된 기분도 든다. 부디 이 팀플레이가 오래도록 호흡이 잘 맞기를 빈다. 



가수 이랑 님의 '먹고 싶다'란 곡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맛있는 걸 먹고 싶다

우리 아빠 꿈속에 오늘 밤에 나타나 

내 얘기 좀 잘해줄 수 없겠니

먹고 싶은 것이랑 놀고 싶은 것이랑

모두 모두 할 수 있게 해 줄래



이 노래 가사를 처음 들었던 날, 토토는 웃음이 빵 하고 터졌었다. 이건 너무나도 마꼬와 나의 노래 같다면서. 나도 우리의 마음이 잘 담긴 곡 같아서 마음에 든다. 내일도 마꼬와 나는 '먹을 수 있는 것, 생각나는 것, 다 먹고 싶다'라고 생각하겠지! 내일의 계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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