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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Oct 07. 2019

마흔 살에는 서핑을 하고 싶어

2019.8.2(금)

매년마다 강원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낸다. 산과 계곡이 넘치도록 있는 강원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토토도 그런 나를 따라 강원도를 좋아하게 되었다. 언젠가 노년이 되어서도 함께라면 강원도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바다가 있어서 강원도가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산을 더 좋아한다. 강원도의 산이 가진 깊고 푸르름은 아름다움 그 자체로 보인다. 나에게 그런 산보다 바다는 못하지만, 다만 강원도에서는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을 좋아했다(마꼬가 온 뒤로는 신기하게도 회가 당기지 않는다...). 결혼 후에는 세 가족이 함께 횡성, 정동진, 대관령, 강릉에서 휴가를 보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강원도로 휴가를 가기 위해 숙소를 알아보았고, 속초에 반려견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었다. 휴가를 앞두고 외주 담당자와 생긴 트러블로 마음이 고된 일도 있었는데 강원도에서의 여름휴가를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잘 버텨내었다. 



올해는 특별히 서핑에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토토랑 해보지 않았던 스포츠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물론 포카를 케어해야 해서 따로 체험해야 하지만. 마침 서핑 교습을 해주는 곳과 멍비치(반려견 출입 및 바다 해수욕이 가능한 해수욕장. 입장료가 있고, 배변을 수거해오면 반려견 간식으로 바꿔준다. 환경오염이 되지 않도록 모래 소독도 하며 깨끗이 관리하는 곳이나, 작년에 반려견들의 출입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입장 견종 제한을 두어서 논란이 있었다.)가 차로 10분 거리라 토토와 번갈아가며 서핑을 체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한 꼬맹이, 마꼬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서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서핑 강습을 받아보았던 친구에게 서핑을 해도 될는지 물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배우러 오는 사람이 많고, 보드에 몸이 부딪히기도 해서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세상에... 친구야. 그거 진심이니. 나는 너무 우울해졌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계획을 포기해야 하다니... 가고 싶은 데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산보다 못한 바다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휴가기간 동안 언제나 낮에는 포카도 같이 들어갈 수 있는 계곡이나 산에 갔다가 해 질 무렵 먹을거리를 사서 정동초등학교에 갔었다. 정동진 영화제에서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영화제의 첫날, 우리는 속초 닭강정과 맥주를 한 아름 사 가지고 갔다. 나는 맥주 대신 탄산수를 마셨다. 그런데 영화 상영으로 조명이 꺼지고, 배부르게 닭강정을 먹고 나니, 그렇게 피곤이 몰려올 수가 없었다. 가져간 돗자리에 눕다시피 해서 영화를 꾸역꾸역 보고 왔다. 내 몸이 온통 '너는 임산부다. 임산부란 말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예전과 같은 컨디션으로는 휴가를 즐길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을 가라앉게 했다. 낮동안 운전을 한 토토 대신 영화제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운전은 항상 나의 몫이었다. 그 날 영화제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토토는 맥주를 괜히 마신 것 같다고 후회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고 집중해서 운전을 했다. 빨리 숙소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휴가 이튿날, 포카도 덩달아 피곤했는지 알레르기가 심하게 올라왔다. 발갛게 변한 귀를 계속 긁는 통에 귀에 열감도 느껴졌다. 주말인 데다 근처에 동물병원이 없어서 펫 샵에서 귀 세정제 제품을 급히 샀다. 면봉으로 포카의 귀를 닦아주는데 까만 귀지가 계속 올라왔다. 귀를 계속 긁고 싶어 했는데 못 긁게 해서 포카도 많이 힘들어했다. 귀에 알레르기가 올라오는 건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생기는 증상이었는데, 휴가 중에 이런 일이 생긴 건 처음이었다. 낮잠이라도 푹 재워야 할 것 같아서 숙소에서 쉬었다. 포카도 예전과는 몸 상태가 다르구나. 우리는 결국 정동진 영화제의 나머지 일정을 포기했다. 포카랑 숙소 주변만 산책하고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포카도 나도,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 휴가였다. 마꼬까지 네 식구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휴가를 보내게 될까. 상상이 잘 안된다. 아니, 당장 휴가를 생각하는 것도 무리겠지만.



휴가가 다 끝나고 서울에 올라와서도 서핑을 못한 게 못내 아쉬웠던 나는, 토토랑 같이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으아... 서핑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임신할 줄 알았으면, 그전에 배우러 다녀올 걸!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이제 다 못하게 되었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 나에게 토토가 걸음을 멈추고 귓속말로 말했다. "너 그동안 하고 싶은 거 많이 했어... 네가 몰라서 그래..." 아닛. 이 사람이. 나는 억울하다. 내가 이것저것 해보았어도 서핑은 안 해본 거란 말이다. 언젠가 마꼬가 태어나고, 마꼬와 잠시 떨어져도 되는 시기가 오면, 기필코 서핑을 배우러 갈 거다. 토토 씨, 그때 파라솔 아래에서 마꼬와 포카를 잘 부탁합니다. 한 삼 년 뒤의 일이겠지만. 그즈음이 되면 내 나이는 마흔 살이려나. 마흔에 도전하는 서핑이라니! 강원도의 산만큼 아름다운 계획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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