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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Oct 21. 2019

취향이 오므라이스

2019.8.21(수)

오... 므라이스???

어제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오늘은 오므라이스야!'하고 계시가 내려왔다. 오므라이스라니. 의외였다. 

오므라이스는 어쩐지 접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나에게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메뉴다. 마침 어제 외부에 일정이 있어서 이동하는 동안 거리에 '김밥들의 천국'이 있는지 훑으며 다녔건만, 왜 먹고 싶은 건 찾으면 그렇게도 보이지 않는 걸까. 결국 일정을 다 마치고 집 근처에서 온갖 한식 메뉴를 다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여신 듯한 식당이 보이길래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갔다. 

'여기에는 오므라이스가 있겠지!' 

하지만 온갖 신공을 부린 메뉴판에는 떡볶이부터 마른안주 메뉴까지 있으면서 오므라이스는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 부부는 주방에 선채로, 오랫동안 메뉴판을 훑어보는 나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도무지 그분들의 눈빛을 피해 그대로 나갈 용기가 없던 나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더듬더듬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뭐... 이것도 단백질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보기 좋게 체했다. 



먹덧의 계시는 있는 그대로 따라야 했다. 거기에 예외는 없다. 오므라이스라면 오므라이스인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오늘처럼 속이 불편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된통 실패하고 나니, 맛있는 걸로 먹어야겠단 호기마저도 생겨버렸다. 어쩌지... 단 한 번도 오므라이스를 돈 주고 사 먹어본 적이 없던 나였기에(급식에서는 먹어봤지만!)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파는 음식점이 어디에 있는지 도통 감이 안 잡혔다. 맛집 블로그를 검색해봤지만... 더 모르겠다. 요즘은 인스타에서 맛집 정보를 볼 수 있다길래 #오므라이스 #오므라이스맛집 해시태그로 검색해보았는데, 어떤 유명한 곳은 쪽지로 당일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단다. 오므라이스가 그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음식이었다니!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먹고는 싶지만, 오므라이스에게 그만한 나의 열정을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애매한 메뉴 앞에서 모호한 고집을 부리는 나였다. 



서울 곳곳에 오므라이스 전문점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오므라이스가 주인공인 가게라니... 오므라이스는 된장찌개, 김치찌개류의 전통 한식과 김밥, 쫄면과 같은 분식도 함께 파는 곳에서야 슬쩍 껴주는 메뉴가 아니었는지. 내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그런 존재였는데 세상에 이렇게 많은 오므라이스 팬들이 있었구나. 하지만 오므라이스 집에 가더라도 오므라이스 단품만 먹고 올 수는 없다. 아직 오므라이스만을 선택하기엔 우리 사이의 공백이 커서... 다른 메뉴를 함께 파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고, 여러 메뉴를 함께 먹을 수 있는 '누군가'도 섭외하기로 했다. 마침 집에서 거리도 많이 멀지 않고, 오므라이스와 어울리는 다른 메뉴가 있으며, 나름 후기가 괜찮아 보이는 일본식 오므라이스 가게를 찾았다. 그곳은 토토네 회사 근처였다.



오늘 아침, 토토는 회사 갈 준비를 하며 꽤나 설레어했다. 우리가 오므라이스를 먹으러 가는 게 처음이란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데이트를 할 때도, 결혼하고서도 늘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먹으러 다녔다. 토토는 모든 음식을 함께 잘 먹어주는 사람이었다. 토토는 덧붙여 말했다. "나... 오므라이스 정말 좋아해"라고. 그리고 신발 신으며 다시 한번 "오늘 둘이서 오므라이스를 먹으러 간다니!"하고 크게 기뻐했다. 오므라이스의 팬인 사람이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내년 봄, 그와 같은 취향을 가진 식구가 늘 예정이다.



마꼬의 입맛, 토토의 입맛. 

둘의 취향은 오므라이스였던 것이다. 

오므라이스는 정말 맛있었다. 따끈하고 포실포실한 계란 옷을 반으로 가르자 부드러운 계란이 볶음밥 위로 쏟아졌다. 물론, 나폴리탄 스파게티도, 치킨 가라아게도 맛있었다. 모든 음식을 거진 내가 다 먹었다. 토토는 그런 나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봤다. 노랗게 활짝 핀 오므라이스의 팬의 얼굴을 한 채로. 토토와 식사를 하는 내내 마꼬는 오므라이스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든 주인공이 아니어도,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이어도 좋을 것 같다. 포실포실한 계란처럼 순하게만 자라줬으면. 그리고 속은 건강함으로 꽉 찬 사람이었으면. 우리 토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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