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3(월)
입던 속옷이 나날이 작아져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임부속옷을 주문했다. 기다리던 속옷이 지난주에 도착했고, 택배 상자를 열었는데 세상에나. 속옷이... 반바지만 하네? 배기팬츠라고 말해도 믿을 것 같은 사이즈다. 내 배가 여기에 가득 찰 만큼 부를 거란 말이지? 변화를 겪고 있음에도 아직도 변화할게 남았다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이를 낳고 나면 튼살과 쳐진 뱃살이 남는다는 출산 경험담이 이제는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도 하고. 지지난주부터는 튼살 방지용 오일과 로션을 사서 온몸에 아낌없이 바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로션을 잘 챙겨 발라도 살이 잘 트는 사람은 튼다고 하지만, 주저할 처지가 못된다. 몸의 지방이 점점 배로 몰린다는 임신 초기 때부터 태워지지 못한 지방이 배 둘레에 사이좋게 모여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제발... 폭동만 일으키지 말아 줘. 잔잔하게 있어줘'하는 나의 바람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온 절차대로 나 역시도 살이 트려는지 밤마다 배 주위가 무척 가려워서, 잠을 설치는 날도 늘었다.
임부속옷은 배 전체를 감싸게 되어 있어서 드라마에 나올법한 촌 아저씨의 배바지처럼 한껏 올려 입어야 했다. 문제는 팬티에 덮인 배가 가렵다는 것이다. 특히 고무밴드가 피부에 닿는 부분이 무척 가렵다. 이 가려움증은 늘 지속되는 건 아니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데, 한 번은 임부 팬티를 입고 외출했다가 배가 갑자기 가려워져서 화장실에 들어가 배를 긁다가 나온 적도 있었다. 두어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시티를 팬티 안으로 넣어서 입어보았는데 그나마 낫더라. 임부속옷도 입다 보니 적응이 되었는지, 배가 종종 가렵긴 해도 품이 넉넉하니 신경도 덜 쓰게 되고, 몸이 불편하지 않아서 마음까지 편해졌다. '임부 속옷을 어떻게 입어'라고 생각했던 게 불과 몇 주전인데. 이제는 비주얼 따위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팬티를 남한테 보여줄 것도 아니고... 편한 게 최고다.
이 임부용 팬티는 토토의 팬티보다 사이즈가 더 크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외할머니의 팬티만큼 그 크기가 커서 처음 빨래 건조대에 팬티를 널을 때, 전에는 못 느꼈던 민망한 기분도 느끼기도 했다. 물론 민망할 일은 절대로 아니지만! '아닛, 내가 이 나이에 할머니 팬티 같은 속옷을 입게 되었다니!' 하는 생각에 기운이 빠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속옷 서랍에서 임부 팬티를 먼저 찾아 입을 정도로 내 몸도 이 속옷에 적응을 해간다. 내 몸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팬티도 큰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큰 일을 하는 사람은 팬티도 큰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