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8(토)
오랜만에 대학 때의 친구들을 만났다. 동아리 활동을 할 때 만났던 동생들인데, 둘은 졸업하고 교제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동거인으로 지냈다. 나는 그간 전하지 못했던 나의 임신 소식도 전했고, 축하를 받았다. 그간 겪었던 임신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함께 마라탕을 먹고, 작업실에서 (아쉽게도) 술 대신 차를 마셨다. 그리고 곧 둘의 중대한 발표를 들었다. 바로 내년에는 결혼한다는 소식! 교제와 동거기간 합쳐서 인연을 쌓아간지 올해가 십 년째. 둘이 파트너로 지내며 함께한 날 동안 어려웠던 시기를 겪었던 적도, 멀어졌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함께 할 용기와 이유가 생겼다 한다. 나도 진심으로 축하인사를 전했다.
우리는 자연히 얼마 전에 뉴욕에서 결혼하고 회사에도 결혼 소식을 알려서 신혼여행 휴가를 얻어낸 김규진 님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도 일찍이 그분의 소식을 SNS에서 처음 접하고 기사도 읽었는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다. 내 친구들이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한들 규진님과 파트너 분의 존재가 그 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바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존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된다. 오늘 만난 커플 외에도, 내 주위에는 결혼을 꿈꾸지만 일인 가구를 꾸리며 사는 헤테로 친구들도 있고, 비혼 주의자도 있으며, 반려동물과 단 둘이 살아가는 퀴어 친구도 있다. 문득 토토와 내가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들의 '이제야 완성되었다', '한시름 놓았다'는 듯 흡족해하던 눈빛이 떠올랐다. 법적으로 혼인 신고를 할 수 있는 사람들 외의 삶을 미완성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이 나는 못마땅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토토와 나는 아이를 가족계획을 세우지 않았었다. 무계획적으로 살아온 성향 탓도 있었지만, 둘 중 누군가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게 될 거라고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보호소에서 태어난 강아지, 포카를 임시 보호하다가 정들어서 덜컥 입양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마꼬도 생겼다. 토토는 결혼한 후로 내내 아이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나는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었다. 남들이 말하는 출산적령기를 넘겨 아이가 생기기 않는다고 하면 훗날 입양을 해서 기를 생각이었다. 생물학적으로 부모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기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어느 누구의 부모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꼬가 생긴 후로, (물론 기쁜 일이긴 하나) 이성애 중심의 가정으로 돈독히 자리매김하는 것 같아서 조금 긴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편한 것들이 모두에게 편한 것인 양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더 신경 쓰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내가 복지의 혜택을 누리며 편하게 살 수 있는 만큼, 법의 보호와 혜택의 외곽에 존재하는 내 친구들의 삶도 함께 나아질 수 있도록 신경 쓸 거다. 훗날 마꼬에게도 세상은 그렇게 같이 사는 거라고 알려주고 싶다.
나는 소득이 적은 프리랜서라 벌이가 시원치는 않지만, 친구들이 웨딩촬영도 하고 싶단 말에 축의금을 넉넉히 보내주고 싶어서 돈을 쪼꼼씩 모으고 있다... 친구들 소득에 비하면 코 묻은 돈일 테지만, 마음 담아서 보태주고 싶다. 친구들아 남은 기간 동안 준비 잘하고, 행복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