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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03. 2020

빈 고양이 집

2019. 10. 6(일)

동네에서 우연히 안면을 튼 고양이 '다라'가 우리 집에 주기적으로 밥을 먹으러 온 후부터, 나날이 기온이 떨어지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아직 가을이긴 하지만, 인왕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벌써부터 밤공기가 냉랭하다. 나날이 쌀쌀해지는 기온 탓인지 다라는 좋아하던 습식 캔도 꺼리고, 밥그릇 안에서 습식을 피해 사료만 슬쩍슬쩍 골라먹고 돌아간 흔적이 보였다. 앞으로는 점점 더 추워질 일만 남아서 인터넷으로 고양이 집을 주문했다. 며칠 뒤 집에 커다란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플라스틱 상자의 뚜껑에 좌우로 버클이 달려있었고, 버클을 끌러 뚜껑을 열면 스티로폼 상자가 들어있는 이중구조의 박스 형태였다. 캣맘들의 사용 후기글을 찾아보니, 스티로폼 상자 안쪽에 단열재를 붙여주면 온기가 더 오랫동안 지속된다고 해서 다이소에서 단열시트도 미리 사두었다. 다라가 상자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 걸 번거로워할 것 같기도 한데 워낙 똑똑하니까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김칫국을 원샷하는 것 같지만, '고양이 집'이라는 이름답게 다라가 겨울 동안 잠을 자러 와도 좋을 것도 같다. 세 마리까지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친구들도 데려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



하지만 며칠 전, 집 앞에서 다라를 마주쳤는데, 산책 가려고 집을 나서는 나와 포카를 보고 한달음에 도망가더라. 후다닥 바쁘게 도망가는 다라의 엉덩이를 보고 있자니 미안하면서도 귀엽고, 서운하면서도 귀여웠다. 우리가 없을 때 밥 먹으러 다시 올 거라고 생각했던 기대와 달리, 다라는 며칠 째 소식이 없다. 다라가 밥을 먹으러 오지 않는다니. 현관 앞에 덩그러니 놓인 사료 그릇과 고양이 집을 보자니 마음이 무겁다.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니겠지... 한층 더 차가워진 밤공기만큼 내 마음도 시린 기분이다.


그런데 다라를 처음 봤을 때 임신했다고 느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새끼를 낳은 것 같지도 않고, 언제나 오동통한 모습 그대로이다. 다라는 조금 풍채가 풍만한 고양이였던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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