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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04. 2020

먹덧이 사라졌다

2019. 10. 7(월)

내 하루의 찬란한 지표 같았던 먹덧이 사라졌다. 먹덧이 뭔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짧은 설명을 해보자면, 임신 경험을 한 여성들이 말하는 임신 중에 겪는 여러 특이점 중에 대표적인 증상으로 입덧, 토덧, 먹덧을 꼽을 수 있다. 입덧은 속이 울렁거림을 동반하는 증상으로 어지러움증, 뱃멀미 혹은 숙취를 경험하는 것 같은 증상을 보인다. 토덧은 우리가 드라마에서 익히 보았던 변기를 부여잡고 토를 쉼 없이 하게 되는 증상인데, 심한 경우에는 본인의 침 냄새에도 울렁거리는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끝으로 먹덧은 무언가를 먹어야만 속 울렁거림을 가라 앉힐 수 있는 증상이다. 임신 후에 어떤 증상을 겪게 될지는 본인도 알 수 없는 터라, 마치 제비뽑기와도 같다. 나는 세상에 입덧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꽤 운이 좋게도) 예상치도 못했던 먹덧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임신 초기부터 이 증상을 겪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덕에 몸무게가 많이 늘긴 했지만, 냄새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못 먹는 음식이 생긴다거나, 밤새도록 변기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일에 비하면 수월했기에 운이 좋았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먹덧은 내 하루 일상의 이정표와도 같았다. 그날 어떤 음식이 당기는지의 여부에 따라 하루의 스케줄이 달라졌고, 그 음식을 먹고 나면 속이 평온해지니, 마음도 덩달아 평온했다. 그런데 이제는 중요했던 목적이 사라진 것 같아서 마음이 허전하다. 아직 태동도 느껴지지도 않는터라, 임신의 유일한 증상이 사라져 버리고 나니 '배 속의 태아는 괜찮은 걸까?' 하는 염려증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먹덧이라니 참 이상하고도 체중이 느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한 증상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했었음에도 어느새 적응해, 증상이 사라지고 나니 서운해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 '왜 먹고 싶은 게 없니... 왜...' 



물론 먹덧이 사라졌다고 해서 아무런 증상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니다. 먹고 싶은 게 딱히 없어서 아무것도 안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먹으면 소화가 안돼서 체한다. 임신 상태에서 체하는 느낌은 임신 전의 체하는 상태와 비할바가 못된다. 상당히 속이 거북하다. 처방약이 아니면 먹을 수도 없으니, 민간요법으로 바늘로 손을 따도 빨간 피만 나올 뿐, 체기는 내려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누워보려고 하면 명치 부근에서 신물이 올라오며 가슴속이 뒤틀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주수가 늘어감에 따라 화장실 가는 횟수도 늘어났다. 체크해보니 한 시간에 한 번 씩 빼놓지 않고 가는 것 같다. 소변을 보러 가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 자궁이 방광을 눌러서 그런 거라고 하던데 이러다가 임신 말기에는 포카랑 산책 나갔다가 봉변을 경험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해보았다. 임신 에세이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의 송해나 작가님도 임신 말기에 화장실에 급히 가고 싶어 져서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가 화장실을 쓰게 해달라고 사정했다는 에피소드를 적으셨더라. 지금이야 화장실에 들리고 싶은 욕구가 한 시간 텀으로 찾아오지만, 임신 말기쯤 된다면 삼십 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가게 될까? 어쨌든 길에서 겪는 생리적 대참사만큼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뭘 먹지. 

"오늘 저녁엔 뭐가 먹고 싶어?"란 토토의 질문에 "네가 먹고 싶은 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토토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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