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8(화)
보고 싶었던 전시를 보러 종로에 갔다가 조계사 앞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났다. 그분은 템플 스테이 담당자이신데 종종 예술가들을 위한 템플스테이 신청 폼이 열릴 때마다 잊지 않고 연락을 주셔서 이 달에도 친구들과 여유 있게 신청할 수 있었다. 오랜 지인이라 임신 초에 임신 소식을 알렸었는데, 마침 템플 스테이 기간 동안 여분의 방이 있다며 새벽에 화장실에 가는 게 번거로울 것 같으니 개인방을 따로 주시겠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이 배가 되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전시를 보고, 인사동 미림 화방에 갔다. 필요한 종이를 사고, 을지로에서 회화 작업을 하는 동생 K의 이름 앞으로 포인트를 적립했다. 그리고 종로 1가 스타벅스에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와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해 먹었다. 카페 안의 큰 창 아래에서 가을 햇살을 받으며 그간 밀린 일기를 썼다. 일기를 다 쓰고 나면 광화문 교보문고 안에 있는 문구 코너에도 들릴 예정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천천히, 예쁜 것들을 많이 보고 가야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임산부의 나들이이기 때문에 이런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마음도 필요하다. 오늘은 토토가 야근할 예정이기 때문에 포카의 저녁 산책도 내 담당이 되었다. 집에 돌아가서 개를 데리고 산책에 나갈 체력을 미리 아껴두어야 한다. 아니, 그전에 집에 돌아갈 체력 비축도 필요하다.
나는 우리 집 털 동생 포카가 강아지였던 시절에 이미 육아의 어려움을 혹독히 맛보았다. 분리불안이 심했던 강아지는 두 보호자와 함께 살아도, 혼자 남겨지는 것이 싫어서 집안의 온갖 것들을 망가트리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난장판이 된 집 안에서 울며불며 달려 나와 매달리는 강아지를 볼 때마다 이런 삶이 평생토록 지속될까 봐 눈 앞이 캄캄해지곤 했다. 언제 괜찮아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끝이 안 보이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포카는 그런 일상을 2년 동안 지속한 후에야 안정이 되었는데, 나는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흰머리가 참 많이 늘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어린 생명을 책임지고 기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포카를 통해 알게 된 셈이다. 그렇게 포카 덕분에 마꼬를 만나면 여러 가지 육체적, 심리적 어려움이 있을 거란 것을 염두에 두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입장이 되었다. 그리고 곧 그때가 올 거란 것을 알기에 혼자 외출했을 때의 시간이 언제나 황금같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의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좋아하는 장소만 골라서 가고,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싶어서 때로는 약속을 거절하기도 한다. 또,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 외출할 때마다 좋아하는 아이템만 들고 다니게 되었다. 오늘은 신명환 작가님의 '당당 토끼' 브로치와 좋아하는 친구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박정은 작가가 생일 선물로 준 가방을 들고 나왔다.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느슨하게 최선을 다해서 쉬고, 작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부지런히, 충실한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