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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07. 2020

김치찜이 먹고 싶다고 왜 말을 못 하니

2019. 10. 20(일)

어느 날 시어머니가 밥을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셔서 요즘 제일 핫한 관심사였던 '김치찜'을 떠올렸으나, 어쩐지 김치찜은 시가 식구들과의 식사 메뉴로 정하기에는 애매한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식사자리에 연세가 구순이신 시할머니도 모시고 가야 할 테니, 시가인 옥수동에서 그리 멀지 않거나 주차석이 넉넉해야 하고, 좌석이 불편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런 조건의 김치찜으로 유명한 곳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치찜은 김치찌개의 변형으로, 어머니들의 세대에서는 집에서 얼마든지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여기실게 뻔하다. 시가에서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김치찜을 먹게 된다면,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밥을 먹어야 하고, 설거지를 하고 가네 마네하는 실랑이가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대신 다른 메뉴를 찾기로 했다. 



나는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기로 하고, 메뉴를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히 떠올렸다. 닭칼국수? 이것도 어머님이 해주셨던 음식이라서 집에서 해 먹자고 하실게 뻔하다. 연포탕? 낙지를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은 희멀건한 국물보다는 매콤한 게 당긴다. 그렇담 함흥냉면? 냉면보다는 쫄면이 더 좋은데... 하아, 너무 어려운 문제다. 김치찜을 제외한 음식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여러 고민끝에 어머님도 좋아하시고, 나도 즐겨먹는 음식인 아귀찜을 선택했다. 옥수역 근처에 유명한 아귀찜 집이 있는데 예전에 시할머니도 모시고 가본 적이 있어서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토토를 통해서 먹고 싶은 메뉴가 아귀찜이라고 전달드렸다. 하지만 약속 당일날 아침, 어머님이 아무래도 속이 안 좋아서 매운 것을 못 드시겠다고 다른 걸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결국 우리는 급히 집 앞 일식집을 예약해 초밥을 먹고 왔다. 신선하고 맛있는 초밥이었지만 그래도 김치찜이 아쉽다. 나는 왜 어머님께 김치찜이 먹고 싶었다고 속시원히 말하지 못했을까... 



나중에 이 일로 언니와 통화를 했고, 언니가 그렇게 먹고 싶으면 자기가 김치찜을 해주겠다고 해서 언니네 집으로 달려갔다. 김이 모락모락 흰쌀밥에 김치를 얹어 먹으려고 하는데 아닛, 이게 모지... 코다리다. 나는 심각한 목소리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김치찜에 코다리는 왜 넣었어?" 그러자 언니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너 코다리 좋아하잖아?"라고 말했다. 언니... 그동안 우리 언니였던 거 맞아? 나 코다리 안 좋아해!(엄마가 코다리와 노가리를 좋아하셔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먹었던 것을 언니는 잘 먹는 것,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원가족이어도 이런 일이 생기는데 하물며 초밥쯤이야. 앞으로 좋아하는 것은 엄청 티내고, 말하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알아서 찾아서 먹을 것이다. 검색해보니 문래동 쪽에 김치찜으로 유명한 집이 있단다. 오랜 세월 동안 장사를 해온 곳이라 허름하기 짝이 없으나 뭐가 어때. 혼자 가서 먹고 올 건데. 아무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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