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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08. 2020

눈물로 재운 소갈비찜

2019. 10. 23(수)

아침에 일어나 누룽지를 끓여먹었다. 따끈한 걸 먹으니 속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날이 쌀쌀해지니 누룽지처럼 불현듯 먹고 싶어 지는 음식들이 떠오른다. 소갈비찜도 그중의 하나다. 나는 요즘처럼 쌀쌀한 날에 포실포실한 감자와 달달한 당근, 당면을 적당히 넣고 끓인 갈비찜 국물에 밥을 비벼먹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어설픈 맛이지만, 내가 만든 소갈비찜이 먹고 싶어서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마침 냉장고도 텅 비어가던 때라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토토가 요즘 회사일이 바쁜 탓에 장 보러 같이 갈 수도 없었고, 집까지 혼자 다 들고 가기엔 힘이 들 것 같아서 소갈비찜 재료만 사기로 했다.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들을 많이 덜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종량제 봉투에 담아보니 제법 묵직했다. 일하느라 가지고 나갔던 노트북 가방을 메고, 양손에는 장본 것들을 들고 걷자니 배가 묘하게 당긴다. 앞으로는 무리해서 짐을 들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임신 전이라면 한 손으로도 거뜬히 들고 날랐을 무게인데! 왜 어른들이 임신 중에는 짐을 들지 말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택시를 타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한우 갈비를 육만 원어치나 사버린지라 차비라도 아껴야 했다. 다행히 버스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포카가 오랜 시간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어서 서둘러 가고 싶었지만, 짐 때문에 빨리 걸을 수 없어서 속이 상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집에 도착했다. 누군가 나의 걷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달팽이와 맞먹는 속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녹초가 되어 장본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얼마 있다가 토토도 집에 도착했다. 당장이라도 오늘 너무 힘들었다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토토에게 토로하고 싶었지만, 토토도 오늘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는지, 나를 보자마자 지쳤던 일과에 대해 털어놓았고 나는 그저 잠자코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물어서 나도 오늘 너무 힘들었다고 답했는데, 내 말투에 짜증이 배어 있었나 보더라. 나의 말을 듣고 토토가 “나리도 이제 몸이 힘드니까 짜증을 내는구나"라고 답했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무심코 했을 말이었을 테지만, 현재 나의 모습이 예전의 나와는 달라졌다는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이 일었다(아마도 임신 호르몬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결국 부엌에서 감자 껍질을 벗기다가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나의 꺼이꺼이 하고 우는 소리에 토토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달려왔다. 자기는 소갈비찜 안 먹어도 된다고, 울지 말라고, 힘들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토토의 그런 말은 내 눈물의 양을 늘리는 데에 더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런 거 아니야... 이 소갈비찜은 나랑 마꼬가 먹고 싶어서 만드는 거라고. 내가 만든 소갈비찜이 먹고 싶어서 오늘 무리해서 장을 봤고, 내일 맛있게 먹으려면 오늘 밤에 갈비를 재워놓아야 한단 말이야”하고 차분히 말하면 좋았겠지만, 울먹이느라 말을 제대로 뱉지 못했다.



나는 당황해하는 토토에게 "마꼬가 돼지갈비는 싫대서 한우갈비 산 거야아... 이거 사느라고 짐도 무거운데 택시도 못 타고 집에 왔단 말이야... 내일은 꼭 갈비를 먹고 싶단 말이야.. 엉엉.... 그러니까 오늘 만들어야 해... 그냥 하게 내버려 둬... 엉엉!" 하며 서럽게 울었다. 도대체 왜 우는지를 묻는 토토에게 감정이 격해진 상태로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어서 그냥 나중에 설명하겠다고, 그냥 나를 내버려 두라고 했다. 토토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내 옆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둬 달라는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는 얼마간 안절부절못하다가 나를 달래 보려고 "윤나리... 이번 주말에 82년생 김지영 보러 갈래?"라고 묻더라. 아...... 물론 내가 그 영화의 개봉 날짜를 기다렸고, 요 근래에 상영 중인 영화 중에 제일 보고 싶어 했던 영화인 건 맞지만... 임신 호르몬 때문에 우는 아내에게 82년생 김지영을 보러 가자고 하는 남편의 말에 나는 더 눈물이 쏟아졌다. 더는 웃을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날이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서먹한 밤은 임신 호르몬과 함께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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