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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09. 2020

연남 살롱에서 만나요

2019. 10. 25(금)

오늘은 작업실에서 퇴근하고 친구 J와 연남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경의선 숲길 공원을 걸었고 나는 소중한 보물을 소개하듯 J를 연남 살롱으로 안내했다. J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가 왜 연남 살롱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장황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내가 뭘 먹고 싶어 하든지 어디든 함께가 줄 친구였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곳을 친구도 좋아해 줬으면 하는 바람에 설레어 말이 길어졌던 것 같다. 연남 살롱에는 그저 '맛있는 곳이야'라는 한 마디의 설명으로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 그런 점에 이끌려 계속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즐겨먹는 메뉴는 '오늘의 수프와 토스트 세트'이지만(수프는 그날그날 끓여서 신선하고, 토스트를 시키면 사장님이 직접 만드시는 수제잼 3종도 맛볼 수 있다), 아쉽게도 오늘은 저녁을 먹고 2차로 들린 터라 말차 빙수와 커피를 주문했다.



평소 디저트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임신을 하고 나니 이것저것 먹고 군것질 거리로 삼고 싶은 게 많아진다. 그중에서도 단연 제일은 연남 살롱에서 파는 모든 메뉴들인데, 사장님이 모든 재료를 세심하게 신경 써서 준비하는 것을 알기에(사장님도 트위터 유저이시다. 계정에 오픈 준비를 위해 일하시는 내용의 글이 종종 올라온다.) 마음 놓고 찾게 되었다. 연남 살롱의 메뉴들도 대부분 디저트이기는 하지만 마카롱, 케이크, 빵 등... 다른 카페에서 파는 디저트 메뉴와 비교하기에는 아깝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졸업작품 준비와 파트타임을 병행하며 생활했던 학생 때부터 가족과 식사를 따로 하며 지냈다. 잠도 겨우 챙겨서 자던 시기였기에 누군가와 밥때를 맞추어 식사를 하는 것보다 혼자 챙겨 먹는 삶에 나날이 익숙해졌다. 워낙 어떤 음식이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 야근이 많았던 직장에서 하루 두 끼를 먹어야 할 때도 메뉴 고르기가 남보다는 수월한 편이었고, 조미료가 많이 들어갔던, 간이 세거나 덜 되었건 간에 속만 채우면 그만이라고 여겼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음식에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꽤나 중요한 것임을 알려준 것은 토토였다. 위장이 예민한 체질이라 소화불량이 잦았던 그는 나와 연애를 하면서 먹거리 때문에 이런저런 애로사항이 많았다 한다(그는 이런 애로사항을 나와 결혼한 후에야 털어놓았다). 나는 그와 이십 대 후반에 만나 삼십 대를 함께 보내며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헛배를 부르게 하고 먹어도 배가 금방 꺼지거나, 소화가 어렵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토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연남 살롱의 모든 것에 정성이 배어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비싼 인테리어보다 낡은 가구로 채워졌어도 생활의 흔적이 묻어나는, 성실히 정돈해놓은 집을 동경하는데(이런 걸 연상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 장롱이 떠오른다) 연남 살롱은 그런 느낌과 사뭇 닮았다. 연남동을 떠나 홍제동으로 이사 온 뒤에도 누군가가 정성스레 만들어준 음식이 먹고 싶어지거나 혹은 그런 장소에 가고 싶을 때마다 연남 살롱을 찾게 되었다. 이제 마꼬를 낳게 되면 당분간 외출은 꿈꾸지도 못할 테니, 좋아하는 곳은 갈 수 있을 때 부지런히 가두어야 한다. J는 오늘 연남동에 있는 모 출판사의 면접을 보았다. 우리는 산처럼 쌓인 빙수를 먹으며 J의 이직이 성공하길 빌었다. 그럼 언제든지 퇴근 후에 연남 살롱에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집에 오는 길에 어제의 기분을 달래려고 꽃을 조금 샀다. 어제 왜 울었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지만 어제가 힘들더라도, 다음 날 나아질 수 있어서 다행이란 마음이 들었다. 화병의 꽃이 시들 때 즈음 다시 연남 살롱을 찾게 될 것 같다. 그때는 꼭 '오늘의 수프와 토스트 세트'를 사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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