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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20. 2020

뚱뚱하면 어때서

2019. 11. 8(금)

평생 동안 다이어트를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건강을 위해서 하루정도 식사를 거른 적은 있어도, 살을 빼기 위해서, 더 작은 옷을 입기 위한 고군분투는 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더 좋은 재료를 선택해 먹고, 고루 잘 챙겨 먹으면 된다는 주의였다. 내 몸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다기보다는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멀리하고, 참는 것이 어려웠던 편에 속하는 단순한 사람이어서 그랬다. 나는 남들이 선호하는 마른 체형도 아니었고, 적당히 살집이 있으며, 건강해 보이는 체격을 가졌다는 말을 듣고 살아왔다. 어깨가 넓다는 표현으로 '떡대가 차암~ 좋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었음에도 결혼식에서 남들이 뭐라고 평가하던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입고 싶었던 오프 숄더 드레스를 골라 입기도 했다. 결혼식 날짜를 잡고, 드레스 가봉을 하러 가기 전에도 살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나였는데, 결혼 후에는 돌아오는 명절마다 늘어나는 체중에 조금씩 예민하게 되었다. 내 짝꿍 토토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피곤하면 산들바람에도 날아가버릴 것 같은 종이인형처럼 살이 쭉쭉 빠지는 타입이다. 하지만 나는 살이 찌거나 몸이 부어오르는 체형이라 둘이서 함께 힘든 시기를 보냈더라도 한 사람은 한없이 가엽고 측은해지고, 다른 한 사람은 포동포동 살이 올라 마음이 늘상 편해 보이는 것이다. '새 아기'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여러 번의 명절을 겪는 동안, 언젠가부터 현관 앞으로 마중 나오실 때 어머님의 눈빛을 살피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몸에 배었다. 다행히 내 동창의 못돼 먹은 시어머니처럼 밥상에서 며느리에게 '00 이는 살 좀 빼라'라는 개념 없는 고나리질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체중이 빠졌을 때와 늘었을 때의 눈빛이 다른 것만은 확실했다.



임신 소식을 주변에 알리니, 축하 인사와 함께 출산의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서 다양한 증상에 대해 알음알음 듣게 된다. 그중 단연코 기억에 남았던 내용은 먹덧 증상을 겪었던 친구의 일화였다. 주변에서 먹고 싶은 건 먹어도 된다고 권하는 통에 몸무게가 30kg가량 늘었다는데, 출산 후에 일부만 빠지고 10kg은 아직도 빼지 못했다 했다.(또, 한 가지 더 기억나는 것은 어떤 작가님이 출산 후에 손목 통증이 심해져서 임신 전에 고수했던 작업 방식을 포기해야 했다는 무시무시한 일화도 있었다.) 나처럼 임신 증상이 먹덧이었다는 친구는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으면 임신 말기에 살이 훅훅 찐다며, 아기 낳고 모유 수유하면 저절로 빠진다는 어른들의 말에 절대로 현혹되지 말고, 먹고 싶은 음식은 양을 조절해가며 조금씩 먹으라고 충고했다. 나도 지금 몸무게가 많이 늘은 터라 몸이 매일마다 많이 붓고, 불편한데 30kg이 단 몇 개월 만에 늘었을 친구는 얼마나 거동이 불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 초기에는 맘 카페의 임신 말기 게시판에서 '다들 몸무게는 얼마나 찌셨나요?'같은 게시글이 올라올 때마다 댓글을 살피며, 살이 찐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을 가졌다. 그건 결혼 전 남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라 나조차도 놀라웠는데, '임신 전의 몸무게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막연한 걱정과 함께 예상치 못한 나의 모습을 겪을 수도 있다는 염려증도 동반했다. 그런데 오늘, SNS에서 비만 혐오에 대한 글을 보았다.


마르지 않고, 표준에서 벗어난 몸무게 또는 체형을 가진 사람은 게으르거나, 자기 관리 능력이 떨어지거나, 충동 억제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 사람이 가진 많은 인격적 특성이 몸(살)으로 환원된다는 점에서, 정말 혐오라 부를만하다. - 트위터 <우롱차 요정> @Koma12E 님의 계정 중에서



그래, 상대방에게서 나의 몸을 평가받는 건 꽤나 불쾌한 일이지.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혐오적 평가를 스스로 하고 있었던 걸까... 체중이 늘은 것에 대해서 시부모님에게 해명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도 어쩌면 나조차도 몰랐던 사이 내면에 이런 생각을 키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체중 증가는 임신을 겪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퇴원 후 조리원에서 맞이한 첫 끼니부터 식단을 조절했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그 정도는 해야 되는 것일까 하고 혼란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장 내 뱃속에 애가 있고, 어찌 보면 내 생명을 걸고 임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나의 건강보다 남의 평가를 받는 일을 고민하자니 숨 막힌다. 임신한 후로 매일매일 내 몸에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어서일까. 이제는 무탈히만 이 시기를 보내게 해 달라고, 이전의 몸무게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으니 부디 아픈 곳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그럴리는 없겠지만) 바라기도 한다. 솔직히 몸이 망가질까 봐 두렵다. 무엇보다 이전의 모습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 그것이 건강하다고 타인에게서 칭찬을 받던 몸이던,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좋아하는 몸이던...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이전의 몸무게를 되찾지 못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보다, 손목이 아파서 작업 방식을 바꿔야 했다는 모 작가님의 일화에 더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오늘도 잠자기 전에 토토에게 튼살 크림과 오일을 발라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등과 옆구리에 로션을 살근히 발라주는 토토에게 묻는다. 내가 "나 살 많이 쪘지?" 하면, 토토는 언제나 "아니이~ 예쁘지"하고 답한다. 살이 찐 건 사실인데, 그는 오늘도 바보 같은 대답뿐이다. 토토야, 그냥... 우리 같이 포동 해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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