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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18. 2020

몸이 보내는 신호

2019. 11. 7(목)

며칠 전부터 손등과 발등에 작고 오돌토돌한 수포가 올라왔다. 아픈 건 아닌데 은근히 신경 쓰이고 간지럽다. 삼십 대 초반 즈음부터 간혹 일 때문에 밤샘을 연이어하게 되면, 투명한 수포가 손바닥에 한 두 개쯤 올라왔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이런 증상에 덤덤해졌다.



이십 대에는 직장에서 만난 삼십 대의 선배들이 온갖 영양제를 서랍에 넣어두고 아침마다 챙겨 먹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갓 서른을 넘기게 되자 자연히 깨닫게 되더라. 나는 그즈음 이유 없이 몸 이곳저곳이 차례로 아파서 여러 번 병원을 찾았고, 이내 수포도 내 몸의 기능이 조금씩 저하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의 하나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로 손바닥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 때면, 쉬어야 한다는 주의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하루 이틀 정도 푹 쉬었는데 그러면 이전의 컨디션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나 보다. 임신을 했고, 내 몸이 예전과는 다르게 금방 회복이 어렵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수포가 군락을 이루어 나타났다. 늘 건강했다는 자부심으로 내 몸을 살뜰히 챙기지 않았던 사이 면역력이 꽤 떨어진 모양이다. 그간 내 몸에 수포가 올라올 때만 바지런히 쉬어왔으니, 내 몸이 이번에도 그 방법으로 신호를 보내온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증상은 지난주에 친구들과 여행 갔을 때부터 보였다. 경주에 갈 때 영양제를 따로 챙기지 않아서 밤에 일찍 자는 것으로 컨디션을 회복했는데, 수포는 금방 사라질 듯하다가도 또다시 올라오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콧물이 줄줄 흐르고 눈도 조금 가렵다. 혹시 포카 털에 알레르기가 생기려는 걸까. 그러면 곤란하다. 서둘러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청소기를 꼼꼼하게 돌렸다. 그리고 당장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등한시했던 임산부 영양제를 찾았다. 내 몸의 면역력이 떨어져서 반려동물의 털 알레르기가 생기는 상황이 온다면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포카는 우리 가족이니까. 서로 건강히 잘 지내려면 우선 내 몸이 건강해야겠구나. 이제 나는 두 쪼꼬미의 보호자가 될 테니까, 아프면 안 된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 집 강아지는 내가 부엌 찬장에서 약상자를 꺼내와 부스럭거리니 간식을 주는 줄 알고 호기심을 갖는다. 하긴, 한 달에 한 번 먹는 심장사상충 약도 간식인 줄 아는 강아지이다. 어린 시절에 유행하던 노란 종이 상자에 든 캐러멜 두 개 정도 크기의, 빨간색을 띤 심장사상충 약은 강아지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드시 챙겨 먹여야 하는 중요한 약이기에, 포카가 혹시라도 먹기를 거부할까 봐 이 약을 먹일 때면 엄청 맛있는 걸 아꼈다가 이번에만 '특별히' 주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러면 포카는 얻기 어려운 소중한 간식을 먹은 것처럼 만족해했고, 네 살이 된 지금도 간식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어서 언제나 손쉽게 약을 먹이는 마법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번에는 포카가 아닌 나에게 연기를 해볼까. 생각만 해도 비릿한 알약이지만, 세상 맛있는 거라고 여기며 삼켜보기로 다짐했다. 알약의 껍질을 소중히 벗겨 한데 모았다가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꿀떡하고 넘기는 순간, 포카와 눈이 마주쳤다. 나름 성공적이었던 걸까. 포카는 자기도 한 입 달라는 뜻으로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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